장미, 가시의 자궁 — 아름다움의 내부를 파고드는 시

붉은 치마폭이 겹겹이 고이는 것은
제 몸속 둥근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다

가시를 세워
끝내 밀어내지 못한 중심

꽃잎의 긴장을 한 꺼풀 들추자
비로소 드러나는 안쪽

덜 여문 살처럼
말랑하고 육중한 생이
거기 웅크리고 있다

향기는
끝내 터지지 못한 비명

뿌리에서 끌어올린 뜨거운 피가
단단한 살결을 밀어 올릴 때

붉은 것이
안쪽에서부터 꺼진다

우리는
그 첫 함몰을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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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가시의 자궁 — 아름다움의 내부를 파고드는 시”에 대한 2개의 생각

  1. 선생님의 이 시를 읽으면서, 장미를 가시를 숨기고 농염한 향기와 자태로 우리를 붙잡는 꽃이라는 상투적 관점이 아닌, 장미의 번식이라는 세부적 관심이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시제가 ‘가시의 자궁’이고 장미 자궁이 함몰하게 된 이유가 시의 내용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번식을 위해, 생식기인 꽃을 피우고 꽃 속에 꿀 샘과 진한 향기를 두어 향기 맡고 꿀 얻으러 온 벌,나비를 이용하여 수태를 하고, 수태가 이루어진 꽃 진 자리에 열매를 맺어 열매 속 씨로 하여금 자신의 유전자 종을 남긴다고 알고 있었는데, 장미는 꽃이 곱고 향기 진한데 열매가 없는 고로 번식은 어떻게 하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검색을 하여 보았더니 장미도 씨앗 번식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 열매없이 씨를 만드는 꽃인데, 씨앗 번식 과정이 까다롭고 성공률도 떨어져, 잘 하지 않고 접목이 일반적 번식법이라고 알려 주네요. 그래서 또, 과실도 없고 씨앗 번식도 별로인데 굳이 꽃이 탐스럽고 향기 진할 이유는 또 무언가라는 쓸데없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너무 알려하지 말아라는 말을 하는 듯하여, 멈추고 그냥 추정의 영역으로 남겨 놓았지요.
    자태 고와 아름답게 치장하는 이유는 곧 오실 임을 위한 것이겠고, 자궁 가득 진한 향기로 채우는 이유 또한 그럴 거라 여기며. 곱게 꾸며 한껏 꾸미고선 임에 닿지 못할까 두려워 독한 향기로 알리려 하는 형상이려니 여기며.
    이크, 오늘 시제에서 너무 벗어 났군요. 자궁이야기니 정신을 못 찰구선. 자궁에 초연할 나이도 되었구만.
    오늘 중심 이야기는 장미 자궁이 함몰한 이유지요. 사람의 소음순 대음순처럼 빙둘러 겹겹의 꽃잎으로 에워싸고는 깊은 함몰의 구덩을 만들어 들어 앉은 이유. 답은 제 몸 속 둥근 무게를 견디기 위함이라 했고요. 여기서 둥근 무게는 자궁이 생명을 잉태하는 곳이니, 우주만큼의 무게인 새 생명의 무게로 이해하여도 좋을 듯하군요.
    사람이나 꽃이나 생명이 시작 되는 곳인 자궁, 한 생명의 무게를 견디기 위하여 중심에 함몰의 구멍을 만들고 소음순, 대음순 같은 꽃잎으로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거군요. 뿌리가 흡수한 땅의 자양분이 뼈와 살을 위로 밀어 올릴 때 생식의 중심 자궁은 푹 꺼져 안전한 생명의 굴을 만들었고요.
    생명의 탄생은 두고두고 신비로울 따름 이군요. 오늘도 생각의 영역을 넓힌 듯하여 기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답글
    • 이제 가을이 오고 있나 봅니다. 건강히 잘 계시지요?

      울림님의 글을 읽으니 마치 제 시에 대한 한 편의 평론을 읽는 듯합니다. 한 송이 장미에서 번식과 생명의 신비까지 생각을 이어가신 그 긴 사유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시에서 말한 ‘둥근 무게’와 ‘함몰’은 꼭 식물학적인 장미의 구조만을 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움의 가장 깊은 곳에는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가, 생명을 품는다는 것은 얼마나 무겁고도 아픈 일인가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미지였습니다. 그런데 울림님께서는 그곳을 ‘새 생명을 견디기 위해 마련된 생명의 굴’로 읽어주셨네요. 시를 쓴 사람의 생각을 넘어 독자의 사유 속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저도 새삼 흥미롭습니다.

      특히 “한 생명의 무게”라는 말이 오래 남습니다. 어쩌면 꽃잎이 겹겹이 모이는 것도, 향기가 짙어지는 것도, 중심이 깊어지는 것도 모두 무엇인가를 품고 견디기 위한 몸짓이라고 읽을 수 있겠지요.

      시는 쓰는 사람이 끝내지 못한 생각을 읽는 사람이 이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울림님의 글을 읽으며 오히려 제 시의 안쪽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늘 깊이 읽어주시고 생각의 가지를 멀리 뻗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가오는 가을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글과 함께 평안한 날들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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