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믿어왔던 만큼은 아니다.
얼마 전 아내와 산에 올랐다.
아내는 무릎이 좋지 않아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
숨이 가빠지고, 걸음이 자주 끊겼다.
그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걱정이 아니었다.
‘오늘 리듬 깨지겠는데.’
그 생각이 먼저였다.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계산이 끝나 있었다.
같이 천천히 갈지,
아니면 내 속도로 갈지.
그리고 나는 선택했다.
나는 아내보다,
내 리듬이 더 중요했다.
잠깐 망설이는 척은 했지만
사실은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천천히 와.”
그 말을 남기고
나는 먼저 올라갔다.
혼자 걷는 길은 편했다.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나는 그 상황을
‘각자의 페이스’라고 합리화했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그래서 더 쉽게 믿었다.
비슷한 순간은 일상에도 많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평가를 끝내버리는 순간.
친절하게 행동했지만
그 이유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을 때.
그럴 때마다 묻게 된다.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일까,
아니면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걸까.
요즘은 한 가지를 인정하려고 한다.
나는 생각보다 이기적이고,
그걸 꽤 자연스럽게 감추는 사람이라는 것.
그 사실이 불편하지만,
부정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적어도
모른 척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날 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가방을 받아 들었다.
손에 전해지는 무게가
이상하게 크게 느껴졌다.
그 무게를 느끼며 걷는 동안,
변명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은 설명 대신,
이 무게를 그대로 느끼며 걷는다.
*관련글 보기
장독대 정화수와 역고드름: 어머니의 기도에서 배우는 한국 전통 신앙 이야기
선비천사의 브런치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이 글이 마음에 남으셨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35-3671093 (방철호)
이 글들을 엮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 전자책 보러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