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오래전부터 대머리였다. 정확히 말하면, 대머리가 되어가는 사람, 혹은 대머리를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머리숱이 많았던 시절도 분명 있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20대 초반, 세숫대야에 얼굴을 담그면 거품보다 먼저 눈에 띈 건 빠진 머리카락이었다. 빗질을 하고 나면 빗살 사이로 매달린 잔해들이 내게 속삭였다. 이제 곧 시작이라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작은아버지처럼 머리숱이 점점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유전은 무심했고, 시간은 정직했다. 방바닥에는 늘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고, 사진 속 이마는 점점 넓어졌다. 나는 조용히 모자를 쓰기 시작했고, 머리를 감을 때마다 거울을 피했다.
탈모는 단순히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체면이었고, 자존감이었고, 청춘에 대한 침묵이었다. 젊은 날, 여자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대머리는 좀 아니야”라는 말은 장난처럼 들렸지만, 그 웃음 뒤에 감춰진 판단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개그 프로그램에선 대머리가 늘 웃음의 대상이었다. 아무도 탈모인의 마음을 묻지 않았다. 우리는 농담의 대상이었고, 배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도했다. 어성초를 달여 마시고, 검은 콩을 볶아 먹었다. 솔잎 즙을 바르고, 비타민을 챙겨 먹었다. 그 어떤 방법도 효과는 미미했다. 명절이면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 작은아버지, 나 셋이 나란히 누우면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보름달이 셋 떴다고. 그 웃음 속에는 정겨움이 있었지만, 나는 입꼬리를 올리면서도 마음 한쪽이 저릿했다.
그런데 문득 생각났다. 과거 일본의 무사들은 정수리를 밀어 대머리를 만들었다. 중국 청나라의 병사들도 머리를 일부러 밀어 특정한 형태로 유지했다. 그들에게 대머리는 복종과 충성의 상징이자, 사회적 정체성의 표현이었다. 머리카락을 지운다는 행위가 부끄러움이 아니라 존엄과 소속을 의미했다. 나는 그 사실이 새삼 위로가 되었다. 시대만 달랐다면, 나 역시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는 용맹한 사내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는 탈모를 여전히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다행히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이 탈모를 생존의 문제라 언급했고, 보건복지부는 청년 건강 바우처로 탈모 치료 지원을 검토 중이다. 나처럼 탈모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복합적인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프로페시아 계열의 복제약, 미녹시딜, 전립선 치료제를 조합한 처방을 통해 일정 부분 효과를 보았다.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탈모가 내 삶을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꺼이 감내했다.
새로운 치료제 연구 소식에도 눈길이 갔다. 코스모파마슈티컬스는 2025년 12월 3일 클라스코테론 5% 용액의 두 건의 3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회사가 제시한 539%와 168%는 각각 위약 대비 목표 부위 모발 수 지표의 상대적 개선 수치다. 사용자의 전체 머리카락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이 발표만으로 전신 부작용이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임상시험 결과 발표와 판매 허가는 별개이므로, 치료 선택은 의료진과 상의해야 한다. 코스모파마슈티컬스 발표 원문(2025년 12월 3일).
스테비아 유래 성분인 스테비오사이드와 미세 바늘 패치를 이용해 미녹시딜을 전달하는 연구도 발표됐다. 다만 발모 효과를 확인한 것은 동물실험이다. 사람에게 기존 치료보다 몇 배 더 효과적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연구의 가능성과 실제 치료에서 확인된 효과를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미세 바늘 패치 연구 논문 초록.
이처럼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도 탈모를 하나의 질병이자 치료 가능한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거울을 피해 숨지 않는다. 풍성했던 머릿결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단단해졌다. 탈모는 내 몸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가장 오래 단련시킨 것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머리카락이 사라져도 삶은 계속되고, 희망은 다시 자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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