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은 하늘이 아니라 흙에서 시작된다: 글쓰기와 현실의 거리

아내는 집 아래 화원에서 일하고 있다.
1층은 생명과 죽음이 정직하게 교차하는 공간이다. 물을 주면 꽃이 피고, 가지를 치면 새순이 돋는다. 이곳은 결과가 분명한 세계다.

반면 나는 2층 방에 고립되어 있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노트북의 깜빡이는 커서와 마주한다. 창문을 통해 올라오는 것은 꽃향기가 아니라 비릿한 흙냄새, 그리고 아내의 투박한 가위질 소리다. 나는 그 소리를 피해 모니터 속으로 숨는다.

이상의 소설 속 인물은 겨드랑이의 가려움을 느꼈다지만, 나의 통증은 머리에서 시작된다. 관자놀이가 조여 오고, 정수리의 신경이 곤두선다. 생각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의 전형적인 감각이다.
머리 위로 돋아나는 것은 깃털이 아니라 부서진 문장들의 파편이다.

나는 이 방에서 ‘비상’을 꿈꾼다. 그러나 천장은 낮고 벽은 단단하다. 머리는 무겁고, 날개는 나를 날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의자에 붙들어 매는 추처럼 느껴진다.

창밖의 아내는 고무장화를 신고 쪼그려 앉아 분갈이를 하고 있다. 손톱 밑에는 검은 흙이 스며 있다. 그녀에게 꽃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돌보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생명이다.

나는 다르다. 발은 공중에 떠 있고, 맨발은 지면을 잊은 지 오래다. 아내가 흙 속에서 현실을 붙잡고 있을 때, 나는 공기 속에서 단어를 조합한다.
아내가 죽은 가지를 잘라낼 때마다, 나의 문장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가벼운 문장은, 무거운 진흙보다 못하다.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머릿속의 뒤틀린 이미지들을 억지로 접어 넣는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관념은 옅어지고, 현실의 습기가 발목을 붙잡는다.

화원 입구에서 아내를 바라본다. 땀에 젖은 얼굴, 흙 묻은 손, 반복되는 노동.
아까 떠올렸던 화려한 문장들은 이 장면 앞에서 힘을 잃는다.

“물 좀 줄까?”

그 말은 비상이 아니라 낙하에 가깝다.
아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는 몽상가가 아니라, 현실로 내려온 한 사람이 비친다. 그 순간, 머리의 긴장이 풀린다.

나는 그녀 옆에 선다. 흙을 내려다본다.
비상이란 하늘로 도망치는 일이 아니라, 현실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꽃은 날개가 없어도 위로 자란다.
진흙은 말보다 무겁고, 삶은 문장보다 분명하다.

머리의 통증이 잦아든다.
해 질 무렵의 화원, 두 개의 그림자가 흙 위에서 하나로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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