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바위틈의 가재|말라가는 옹달샘에서 만난 작은 생명

숲속 옹달샘 바위틈에서 알을 품고 있는 작은 가재

오래된 숲길을 걷다가 조그만 옹달샘 앞에 멈춰 섰다.

물은 거의 말라 있었다. 바닥의 돌들은 햇볕에 등을 드러냈고, 젖은 흙은 마지막 물기를 붙잡고 있었다.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숲은 조용했지만 죽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끼 낀 바위에 앉았다. 바람 한 줄기가 마른 잎을 뒤집었다. 작은 잎 하나가 떨어지는 데도 숲 전체가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자연은 큰소리로 가르치지 않는다.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슬쩍 답을 내민다.

옹달샘 가장자리에는 올챙이가 지나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때의 작고 미숙한 모습이 오늘의 삶을 만든다는 점에서, 개구리도 한때 올챙이였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생명은 제 처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람만 가끔 출발점을 잊는다.

그때 바위틈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작고 붉은빛을 띤 가재 한 마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물이 넉넉한 곳도 아니었다. 깊고 안전한 웅덩이도 아니었다. 겨우 몸을 숨길 만큼 남은 축축한 틈이었다.

가재의 꼬리 아래에는 조그만 알들이 붙어 있었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자리에서 또 다른 생명을 품고 있었다. 나는 숨을 줄였다.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숲속 바위틈의 가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웬만한 충고보다 단단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좋은 자리를 얻는 일만은 아니다. 주어진 자리가 좁고 메말라도 몸을 낮추고 다음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상처 난 갈대가 마침내 소리를 품듯, 갈대 피리가 들려주는 상처와 위로의 선율도 결핍이 반드시 끝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말라가는 옹달샘을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재는 그곳을 시작으로 쓰고 있었다. 사람은 넉넉해야 희망을 말하지만, 생명은 부족한 자리에서도 먼저 뿌리를 내린다.

봄도 늘 화려하게 오는 것은 아니다. 찬바람 속에서 작은 꽃 한 송이가 먼저 고개를 내민다. 노란 개나리가 투정부리며 데려오는 봄처럼, 시작은 대개 서툴고 작다. 그래서 더 믿을 만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바위틈을 바라보았다. 가재는 꼬리를 말아 알을 감싸고 있었다. 세상이 넓어서 생명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한 생명이 자기보다 작은 것을 품을 때, 세상은 그만큼 넓어졌다.

삶은 끝나는 듯 보이는 곳에서 자주 다시 시작된다. 다만 너무 작고 조용해서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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