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봄, 부슬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무논 한 자락에서 까만 점들이 꿈틀거렸다. 몸통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배에 꼬리 하나를 달고, 논물 위를 쓱쓱 미끄러지던 올챙이들이었다.
참말로 순했다. 입도 작고 배도 말캉해서 누가 손바닥에 올려놓아도 항의 한마디 못 했다. 콩알만 한 몸, 콧구멍 두 개, 대롱 같은 입 하나. 그것이면 세상을 다 가진 줄 알았다.
그 시절에는 두엄 냄새도 고소했다. 물밑에서 꼬리질하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벼 잎 사이로 스치는 참새 그림자에도 놀랐다. 높은 곳을 차지하려는 욕심도, 목청으로 남을 누르려는 재주도 없었다. 어쩌면 낮은 자리가 주는 자유와 평온을 올챙이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뒷다리가 스멀스멀 돋고, 앞다리도 따라 나왔다. 드디어 땅을 디딜 수 있게 되자 꼬리가 거추장스러워졌다.
그래서 잘라 버렸다. 꼬리만 자른 줄 알았는데, 그 시절의 기억까지 함께 잘라 버렸다.
꼬리가 사라지자 목청이 생겼다.
“개굴개굴!”
어찌나 크게 울던지 논둑을 넘어 장터까지 들렸다. 어제까지 물속에서 입만 뻐끔거리던 녀석이 오늘은 세상이 자기 목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울어 댔다.
웅덩이 하나를 차지하자 주인 행세도 시작했다. 함께 헤엄치던 친구에게 “어디서 탁한 논물을 묻혀 왔느냐”고 나무랐다. 자신도 바로 그 물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감쪽같이 잊었다.
아이쿠야, 개구리가 사람 잡네.
사람 사는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작은 직함 하나, 넓어진 책상 하나, 통장에 늘어난 숫자 몇 개가 등에 다리를 달아 준다. 그때부터 말은 짧아지고 목소리는 커진다. 일상 속 권력이 사람에게 스며드는 방식은 대개 거창하지 않다. 상대의 말을 끊고, 인사를 받기만 하고, 자신의 실수에는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는 데서 시작된다.
세상 모든 개구리는 처음에 올챙이였다. 누구도 뒷다리를 달고 태어나지 않았고, 우렁찬 울음으로 인생을 시작하지 않았다. 작고 말랑한 배로 눈앞의 물 한 뼘을 세상의 전부라 믿으며 살았다.
그런데 조금 높이 뛰게 되면 자신은 처음부터 개구리였다고 착각한다. 도움받던 시절은 지우고, 남보다 늦게 자란 다리는 감춘다. 성공담에서는 운을 빼고 노력만 남긴다. 과거를 지운 사람의 자랑은 언제나 목청이 크다.
개구리가 된 것이 잘못은 아니다. 다리가 생겼으면 더 멀리 가고, 목소리가 생겼으면 필요한 말을 해야 한다. 문제는 높이 뛴 뒤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직 꼬리가 남은 이들을 비웃는 데 있다.
위에 오른 사람과 아래에 선 사람은 영원히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한쪽이 높아지면 다른 쪽이 낮아지는 시소 위에서 배우는 균형과 공존처럼, 세상은 서로의 무게를 기억할 때 오래 버틴다.
초심은 옛날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않는 일이다. 꼬리를 다시 붙일 필요는 없지만, 그 꼬리로 물살을 헤치던 때만큼은 기억해야 한다.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세상 풍자 에세이는 사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도 누군가 앞에서는 개구리이고, 또 다른 누군가 앞에서는 여전히 작은 올챙이다.
오늘 내 목청이 유난히 커졌다면 잠시 뒤를 돌아볼 일이다. 혹시 꼬리를 자르면서 고마움까지 잘라 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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