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노랗게 투정부리며 온다

노란 개나리가 피어난 봄날 풍경

쳇, 쳇, 쳇—.

봄은 늘 조용히 온다고들 하지만, 개나리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아직 바람 끝에는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 있는데 울타리 아래서 먼저 노란 입술을 내민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다리다 지쳤다는 듯 가지마다 노란 투정을 매단다.

햇살이 눈꺼풀을 간질이면 개나리는 하품하듯 꽃잎을 연다. 한 송이가 피고, 그 옆의 한 송이가 따라 웃는다. 어느새 회색이던 골목이 노란 물결로 환해진다. 봄은 거창한 북소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꽃잎 몇 장이 세상의 표정을 바꾸며 찾아온다.

노란 가방을 멘 아이들이 골목을 지난다. 노란 옷까지 맞춰 입은 아이들은 영락없는 병아리 떼다.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가고, 작은 발걸음마다 겨우내 웅크렸던 햇살이 튀어 오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꽃이 길을 만드는 평범한 봄날의 기적이 꼭 먼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개나리는 아이들을 흘겨보는 척한다.

쳇, 쳇, 쳇—. 노란빛은 내가 먼저였는데.

그러나 꽃은 아이들이 지나간 방향으로 몸을 기울인다. 투정하면서도 웃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꼭 사람 같다.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아닌 척하고, 반가우면서도 괜히 한마디 더 얹는 마음. 개나리의 노란빛에는 봄의 환희만이 아니라 오래 기다린 존재의 서운함도 살짝 배어 있다.

목련 그늘진 울타리 아래에는 아직 땅벌도 나비도 보이지 않는다. 향긋한 꽃내음보다 지나가는 사람의 화장품 냄새가 먼저 코끝에 닿는다. 그래도 개나리는 누구를 탓하지 않는다. 서로 가느다란 어깨를 기대고 바람을 견딘다. 이름을 불러 주는 이가 없어도 피어나는 마음은 이름 없는 풀씨처럼 살아가는 작은 존재의 아름다움과 닮았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삶에도 개나리 같은 때가 있다. 남들은 아직 이르다고 말하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어 마음을 열어 버리는 순간이다. 준비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한 발 먼저 내딛는다. 때로는 그 성급함이 상처를 만들지만, 그 용기 덕분에 얼어 있던 하루가 풀리기도 한다.

봄은 정해진 날짜에 맞춰 오지 않는다. 누군가 먼저 웃고,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넬 때 시작된다. 꽃 한 송이가 계절을 모두 바꿀 수는 없어도, 지나가는 한 사람의 마음은 바꿀 수 있다. 창밖의 봄비와 꽃잎을 바라보며 다시 사랑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처럼 말이다.

개나리의 투정이 밉지 않은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노란 목소리에는 어서 일어나라고, 너무 오래 움츠리지 말라고 등을 떠미는 다정함이 숨어 있다. 봄이 왔다고 알려 주는 일은 언제나 먼저 깨어난 존재의 몫이다.

쳇, 쳇, 쳇—.

꽃들은 여전히 입을 삐죽거리지만 햇살은 그 작은 투정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아이들의 웃음은 골목 끝으로 멀어지고, 울타리 아래 개나리는 더 노랗게 피어난다. 그렇게 봄은 조금 성급하고 조금 소란스럽게, 그러나 누구보다 다정하게 우리 곁에 온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먼저 깨운 노란 봄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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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노랗게 투정부리며 온다”에 대한 2개의 생각

  1.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월 초순, 땅에는 빈틈없이 봄 꽃들 사태이지요. 마치 전쟁과 살상, 파괴를 즐기는 인간들의 추악한 세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꽃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더없이 예쁘다는 것을 뽐내기라도 하듯. 예 전에 읽었거나 들었거나 했던 것이 생각 나네요. 인간의 물질(돈)에 대한 탐욕은 끝이 없지요. 누구나 돈벼락 맞아 죽고 싶다는 심정일텐데요. 정작 인간이 그렇게 가지려는 돈을 가지면 무얼하나 보았더니 고작 그 돈으로 근사한 자연 경관을 사서 그곳에 집을 짓고 자기네 가족들과 들락거리며 살더라는 거지요. 자연을 파괴한 재원으로 돈을 벌어 자기는 자연 속에서 평안을 찾고 위로를 얻고 살더라는 모순을 이야기한 것인데요 그러고 보니, 돈좀 있는 자들은 배산임수 화려한 경관 자랑하는 곳곳에 세컨 하우스나 별장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지 싶군요. 선생님 시에서 ‘봄은 노랗게 (개나리처럼) 투정부리며 온다’는 생각에 공감했습니다. 개나리의 꽃 말 중. 희망이 있던데, 사람들의 희망은 왜 그리 실현되기가 어려운 걸까요. 예컨데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은 왜 그리 먼 꿈일까요? 허구헌날 전쟁이구. 이 땅의 통일은 언제나 이루어져 전쟁 걱정하지 않고 애들 키우며 사랑만 하며 살 수 있을까요? 6.25 때 전쟁을 팔십 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멈추지 못하고 겨우 잠시 쉬는(정전) 것으로 남북이 서로 죽이겠다고 군비 경쟁이나 벌이구 있으니 이대로면 이 곳은 논리상으로 지금 당장 다시 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으니 말이지요. 노오란 개나리 같은 어린 아이들이 전쟁같은 무서운 것들일랑 완전히 잊어버리고 서로 사랑만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은 왜 이리 투정부리듯 더디 오는 걸까요? 또, 오기는 오는 걸까요. 북풍한설의 삼동을 굳건히 나야 싹을 틔우는 개나리 꽃을 닮아 가혹한 상황이지만 투정부리듯이라도 오기나 오면 좋겠네요.

    답글
    • ‘울림’ 님의 깊은 공감과 사유가 담긴 글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시 속 개나리의 투정은 그저 봄날의 작은 소란인 줄만 알았는데, ‘울림’ 님의 글을 읽고 나니 그 노란 꽃망울들이 마치 더디 오는 평화와 희망을 재촉하는 아이들의 아우성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자연을 부수어 돈을 벌고, 다시 그 돈으로 자연을 찾는 인간의 모순을 짚어주신 대목에서는 작가로서 저 역시 깊은 부끄러움과 책임을 느낍니다. 우리가 꽃 사태를 즐기는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 혹은 우리 머리 위 북쪽 하늘 아래에서는 여전히 대립과 갈등의 차가운 기운이 가시지 않고 있지요.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노란 가방을 메고 재잘거리는 모습이 더 이상 위태롭지 않은 세상, 전쟁의 공포 대신 사랑만 가르쳐도 되는 세상은 왜 이리 개나리의 투정보다 더디 오는 것일까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가혹한 삼동(三冬)을 견뎌낸 개나리만이 그 눈부신 노란 빛을 터뜨릴 수 있는 법이겠지요.

      비록 투정부리듯 느릿느릿 올지라도, 봄은 끝내 겨울을 이기고 우리 곁에 당도했습니다. 우리의 평화와 통일 또한 그럴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시 한 편에 이토록 넓고 깊은 울림을 더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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