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내게 작은 삼촌은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 영웅은 칼을 들거나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묵묵히 삶의 현장에서 땀 흘리던 사람이었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동네 어귀는 먼저 삼촌의 이름을 불렀다. “언제 오신다냐.” 그 말 속에는 기다림이 묻어 있었다. 나와 형제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버스 정류장을 오갔다. 겨울이면 찬 바람이 볼을 스쳤고, 여름이면 매미 소리가 귀를 울렸다. 그 모든 계절의 끝에는 늘 삼촌이 있었다.
삼촌은 인천 항만에서 일하셨다.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를 오르내리고, 새벽 물안개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던 사람이었다.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삼촌은 수시로 생선을 궤짝째 보내셨다. 커다란 나무 상자 안에 갓 잡은 생선이 가득 담겨 도착했다. 상자를 여는 순간, 바다 냄새가 마당을 가득 채웠다.
어머니는 그 생선을 정성스레 손질했고, 우리는 그것을 바구니에 나누어 담아 동네 집집마다 들고 다녔다. 비린내와 함께 웃음이 번졌다. 동네 사람들은 “항만 삼촌 덕에 또 잘 먹네” 하며 고마워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나눔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라는 것을.
세배를 드리면 두툼한 세뱃돈이 손에 쥐어졌다. 특히 장남 조카였던 나는 늘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삼촌이 내게 준 것은 돈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다녔다. 낡은 대문을 밀고 들어가 절을 올리게 했다. 나는 그때 어른들의 손등에 새겨진 주름을 보았다. 시간이 사람을 어떻게 빚는지, 말없이 배우던 순간이었다.
그 시절의 삼촌은 넉넉한 사람이었다.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눌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삼촌은 여든을 넘겼다. 허리는 조금 굽었고, 귀는 잘 들리지 않는다. 전화기 너머로 “어?” 하고 되묻는 목소리가 길어진다. 나는 그 짧은 침묵 속에서 세월의 길이를 느낀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어릴 적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좋은 식당에 모셔야 할 것 같았고, 멋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드라이브라도 해야 효도라 믿었다.
어느 날, 그런 계획을 조심스레 말했을 때 삼촌은 손을 내저었다.
“그런 데는 됐다.”
짧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단단한 삶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하려던 것은 삼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효도는 보여주는 행위가 아니라, 이해하는 태도라는 사실을 늦게 배웠다.
삼촌은 평생 검소하게 살았다. 인천 항만의 거친 현장에서 번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낡은 5층 건물을 샀다. 1층은 작은 상가, 위층은 오피스텔, 그리고 5층 구석에 삼촌의 보물창고가 있다.
처음 그 철문을 열던 날, 기름과 먼지 냄새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좁은 창으로 들어온 빛이 공중의 먼지를 비추고 있었다. 벽에는 농기구가 걸려 있었고, 전기톱과 소화기, 낡은 작업복, 이름 모를 연장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쇠는 녹이 슬어 있었고, 나무 손잡이는 손때로 매끈했다.
“이건 내가 고친 거다.”
“이건 아직 쓸 수 있다.”
삼촌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그곳은 잡동사니 창고가 아니었다. 인천 항만에서 흘린 땀과 세월, 포기하지 않았던 날들의 기록이었다. 나는 그 공간이 한 사람의 생애를 압축해 놓은 상자처럼 느껴졌다.
몇 해 전부터 삼촌은 가끔 나를 부른다. 차를 타고 창고로 향하는 길, 그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밝다. 그리고는 연장 하나, 농기구 하나를 꺼내 내 손에 쥐어 준다.
“가져가라.”
도시에서 사는 내게 그 물건들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가 건네는 것은 쇠붙이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평생 모은 꿈을 한 번에 넘기지 않고, 가끔, 천천히, 몇 개씩 나누는 것이다.
나는 그 보물들이 오래도록 천천히 줄어들기를 바란다. 창고가 쉽게 비워지지 않기를. 그 속도만큼 삼촌이 오래 살아 계시기를.
창고를 나서면 우리는 늘 같은 식당으로 간다. 동네의 오래된 뼈다귀탕집이다. 문을 열면 김이 피어오르고, 구수한 국물 냄새가 퍼진다. 소주 한 병과 탕 한 그릇. 그리고 포장 한 그릇.
계산은 언제나 삼촌 몫이다. 내가 지갑을 꺼내면 얼굴이 굳어진다.
“내가 산다.”
그 말은 고집이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누군가를 대접할 수 있다는 기쁨, 아직은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다는 안도. 그것이 삼촌을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식사를 마치고 삼촌은 집까지 걸어간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나는 차 안에서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어깨는 예전보다 작아졌지만, 걸음에는 이상하게도 흔들림이 없다.
어릴 적 영웅이었던 작은 삼촌은 이제 느린 노인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진짜 부자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물창고는 언젠가 비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쌓여 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 기억 속에서 또 다른 창고가 되어, 오래도록 빛을 머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삼촌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속도에 맞추어 걷는다. 효도의 의미란 어쩌면 거창한 선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삼촌의 창고에서 돌아와, 차 트렁크에 실린 낡은 연장을 가만히 바라본다. 쇠의 차가움이 손끝에 닿는다. 그 안에는 여전히 따뜻한 시간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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