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길 수필|어린 시절 황토길 추억과 어머니의 노동, 돌아갈 수 없는 길

어른이 된 뒤 나는 황토길을 밟지 않았다.
아스팔트는 단단했고, 신발은 더 비싸졌다.

그런데도 발바닥은 여전히 그 길을 기억한다.
비 온 다음 날의 질척거림.
마른 오후의 먼지.
돌멩이에 찍혀 피가 맺히던 통증까지.

그때 나는 아프다고 소리쳤지만 울지는 않았다.
울어도 길은 짧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하교길은 자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유예’였다.

학교도 아니고 집도 아닌,
그 중간의 시간.

등에 멘 책보따리는 무거웠고
빈 도시락통은 걸음마다 허리를 쳤다.

우리는 떠들며 걸었지만
속으로는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목적지에 아직 닿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가볍게 했다.

인간은 도착했을 때보다, 아직 가는 중일 때 더 자신답다.

무너미 고개를 넘으면 노을이 번졌다.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잠자리가 낮게 날았다.

나는 그것을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노을은
하루의 노동 위에 얹힌 얇은 빛이었다.

노을이 짙어질수록
어머니의 손놀림은 빨라졌다.

밥을 해야 했고,
아궁이에 불을 때야 했고,
내일을 준비해야 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어머니는 땅을 보고 걸었다.

그때 나는 몰랐다.

내가 감탄하던 풍경이
누군가의 생계를 덮고 있었다는 사실을.

황토길 추억은 언제나 따뜻하게 기억된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비가 오면 신발이 빠졌고
마르면 먼지가 목을 태웠다.

배가 고픈 날에는
코스모스보다 저녁밥이 먼저 떠올랐다.

어머니의 지게는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계였다.

상여 집이 있는 산길을 오르내리던 숨소리를
나는 듣지 않았다.

아이의 순수는
때로 세계를 보지 않는 방식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한 장면이 또렷하다.

검은 무쇠솥 뚜껑에 붙은 마른 밥풀.
그 위에 내려앉은 파리 몇 마리.

왜 나는 그날,
그 밥풀을 닦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의 무지는 죄가 아니지만, 어른의 침묵은 책임이다.

나는 반복을 안전이라 믿었다.
같은 길, 같은 노을, 같은 집.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선택지가 없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안전이라 부른 것은 체념이었고
평온이라 여긴 것은 익숙함이었다.

그럼에도 그 하교길은
나를 만들었다.

하교길은 단순한 귀가가 아니었다.
가난과 성장의 시간이었다.

도망치지 않았고
끝내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그 황토길로 돌아갈 수 없다.

길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걷던 아이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안다.

노을은 노동을 덮지 못한다는 것.
지게는 풍경이 아니라 생계였다는 것.
하교길은 추억이면서 동시에 기록이었다는 것.

그래서 묻는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훗날 어떤 이름으로 남을까.

추억일까,
또 다른 무지일까.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가는 중이다.

이번에는
하늘만 올려다보지 않으려 한다.

노을 아래에서 일하는 손도
함께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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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길 수필|어린 시절 황토길 추억과 어머니의 노동,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대한 2개의 생각

  1. 지금 나는 안다

    노을은 노동을 덮지 못한다는 것. 지게는 풍경이 아니라 생계였다는 것. 하교길은 추억이면서 동시에 기록이었다는 것.

    선생님 시를 읽을수록 정서적으로 저와 닮았음을 느낍니다. 이는 농부 부모님과 가난했던 유년의 성장 배경으로부터 비롯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도, 우연히 책장 속에서 발견한, 내 어린 시절의 흑백사진을 본 느낌이었습니다. 길가에 큰 미루나무 종종히 서 있고 돌들이 박힌 울둥불퉁한 비포장 황톳길에 어쩌다 차라도 지날라치면 흑먼지 뿌옇게 일어 한참 몸을 등진 채 길가에 서 있다 다시 가곤했던 모습 그리고 길가 논밭에선 언제나 바지런히 김을 매던 우리 엄마들 모습까지 모두 익숙하고 기시감을 주었습니다. 하교길엔 벗들과 어울려 찔레 꺾고 아카시아 꽃 훑어 먹으며 허기 달래며 해찰로 귀가를 늦추기도 하였지요. 가난한 농가엔 언제나 고사리 손으로 감당할 만큼의 고된 노동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언제나 그 길을 오고 갔지요. 가야하는 것인 줄 알아 갔고, 때 되어야 되돌아 왔구요. 그땐 어려 무엇이 우리 허기의 원인이었고, 누가 이 가난을 짐진 채 비탈고개 넘으려 밤잠 없이 고민하고 있는가는 알지 못했지요. 다만, 이 길이 우리를 언젠가는 이 가난 아닌 곳으로, 문명에 닿아 노을 어우러진 무지개 동산으로 데러다 놓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지금 선생님도 저도 어린 꿈이 이루어져 회색 콘크리트 성, 도시에서 가정을 만들고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구요. 그리고 그 때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고 가난했던 부모님의 삶을 헤아리며 그 분들이 졌던 짐의 무게도 가늠하고 있군요. 저는 시 속 화자나 저의 과거로 향한 시선에 아직 따숨이 남아 있는 것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 무의식 속에 농촌 배경 성장과 가난했던 부모님 등을 배경으로한 유년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난했지만 따순 기억들이 이정표 되어 우리 가는 길을 잃지 않고 있는 듯도 합니다.

    답글
    • 울림님, 따뜻하고 깊은 마음이 담긴 글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을 읽으며 마치 제 기억 속 흑백사진 한 장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미루나무가 서 있던 길, 차가 지나가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먼지길, 들녘에서 묵묵히 일하시던 어머니들의 모습까지. 말씀 하나하나가 제 유년의 풍경과 겹쳐져 오래도록 머물렀습니다.

      특히 “가야 하는 것인 줄 알아 갔고, 때 되어야 되돌아왔다”는 말씀에 마음이 깊이 닿았습니다. 어린 우리는 왜 가난한지, 부모님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계신지 알지 못했지만,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며 자라났던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은 부족함도 많았지만, 지금의 우리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가난은 힘들었지만, 그 안에는 부모님의 희생과 이웃의 정, 그리고 내일을 향한 희망이 함께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부모님 나이에 이르러 그분들의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땀과 한숨이 보이고,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황토길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다 준 삶의 교과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울림님 말씀처럼,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기억들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이정표가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길을 잃을 듯한 순간에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조용히 알려주는 등불처럼 말입니다.

      좋은 기억과 깊은 공감을 나누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 역시 오래 잊고 있던 어린 날의 풍경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마음의 평안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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