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포기하는 법

마지막 날, 서랍 깊숙이 쌓여 있던 수십 권의 명함첩을 쓰레기통에 털어 넣었다.
한 장 한 장에는 이름과 직함, 전화번호와 회사명이 적혀 있었다. 오랜 세월 만나온 사람들의 흔적이었고, 동시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증명해 주던 기록이었다.
명함첩이 쓰레기통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날 내가 버린 것은 종이 몇 묶음이 아니었다. 한 시절의 나였다.
살면서 무언가를 포기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손에 쥔 것을 놓는 순간은 결코 멋지거나 우아하지 않다. 힘껏 잡았던 줄을 놓으면 손바닥에 붉은 자국이 남는다. 포기에도 그런 흔적이 남는다.
나는 오랫동안 버티는 것이 삶의 정답이라고 믿었다.
힘들어도 버티고, 흔들려도 버티고, 내게 주어진 자리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포기는 패배한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그래서 오래 붙잡았다.
돌이켜보면 그 일을 사랑해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일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나를 잃는 것이었다.
직함이 사라진 뒤에도 내가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일까.
아침마다 나를 기다리는 자리가 없어져도 나는 여전히 필요한 사람일까.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이름 뒤에 붙일 직함이 없어도 나는 나일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기에 놓아야 할 때가 왔는데도 손에 더 힘을 주었다.
그러나 삶에는 버텨야 하는 때가 있는 것처럼 놓아야 하는 때도 있었다.
세월과 환경은 내가 영원히 같은 자리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익숙했던 소음은 사라졌고, 평생 나를 설명해 주던 이름표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날 텅 빈 방에 홀로 서서 손을 펼쳐보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때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를 수 없었다. 자유보다는 상실에 가까웠다.
아침에 눈을 떠도 서둘러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오랫동안 몸에 밴 시간표는 사라졌는데 몸은 여전히 그 시간에 눈을 떴다. 해야 할 일이 없어서 편안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허전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내가 하는 일’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집 근처 소래산을 걸었다.
새벽이면 이슬 젖은 흙길을 밟고 돌계단을 올랐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답을 찾으러 간 것도 아니었다. 방 안에 가만히 있으면 자꾸 사라진 것들만 헤아리게 되어 밖으로 나갔을 뿐이다.
걷는다고 마음이 금세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어떤 날은 조금 편안해졌다가 다음 날이면 다시 허전했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날에도 지난 시절의 이름을 듣거나 익숙한 기억을 만나면 마음 한구석이 저렸다.
포기는 한 번 손을 펴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마음속에서는 놓았던 것을 수없이 다시 붙잡았다가 놓아야 했다.
그렇게 여러 날을 걸었다.
나뭇잎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은 아무것도 붙잡지 않았다. 나무 역시 떠나는 바람을 억지로 붙들지 않았다.
어느 새벽, 산 아래 어둠 속에서 하나둘 밝혀지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놓아준다고 해서 지나온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구나.
내가 머물렀던 자리를 떠났다고 해서 그곳에서 보낸 세월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 견뎠던 시간, 실패와 성취, 그 안에서 배운 것들은 직함과 함께 폐기되는 것이 아니었다.
명함은 버릴 수 있어도 살아온 시간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포기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아하게 포기하는 법은 아프지 않게 떠나는 기술이 아니다. 상실을 상실대로 인정하면서도, 이미 끝난 것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일도 중요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이것을 여전히 사랑해서 붙잡고 있는가. 아니면 이것이 사라지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서 붙잡고 있는가.
그 질문은 오래 남았다.
모든 어려움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내려놓는다면 삶에서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역할을 다한 것을 두려움 때문에 붙잡고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때로 포기는 실패가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다.
빈손으로 지내는 시간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거창한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속에 오래 쌓여 있던 말 몇 줄을 적었다.
한 줄을 쓰고 지웠다. 다시 한 줄을 썼다.
그 작은 일이 이상하게 좋았다.
예전에는 세상에 내놓을 정답을 정리하느라 바쁘게 살았다면, 이제는 내 안에서 오래 말하지 못하고 있던 목소리를 들어볼 시간이 생겼다.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시가 되었다. 상처라고 여겼던 흔적은 소설과 수필의 문장이 되었다.
빈손이었기에 다시 펜을 쥘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포기한 것은 내 존재가 아니었다. 한 시절 나를 설명해 주던 이름표 하나를 내려놓았을 뿐이었다.
우리는 흔히 자기계발을 더 많이 얻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배우고, 더 이루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삶의 후반으로 갈수록 다른 종류의 성장이 필요해진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놓아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힘이다.
모든 것을 끝까지 쥐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강한 사람은 아니다. 놓아야 할 것을 알아보고 제때 손을 펴는 사람에게도 강인함이 있다.
우아하게 포기한다는 것은 패배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일이 아니다.
할 수 있는데 귀찮아서 그만두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 이제는 나의 시간이 지나갔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역할을 내 존재 전체와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아한 포기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배웠다.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정직함.
잃은 것을 충분히 아파하는 시간.
그리고 비워진 손으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다시 시작하는 용기.
내게 그 작은 시작은 글 한 줄이었다.
삶은 언제나 더 높이 오르는 일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계절에는 올라가야 하고, 어떤 계절에는 내려와야 한다. 어떤 때에는 끝까지 붙잡아야 하고, 어떤 때에는 손을 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고 무엇을 이제 놓아주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내려놓는 일이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 사랑한 것일수록, 오랫동안 나를 설명해 준 것일수록 놓을 때 아프다.
그 아픔까지 사라져야 잘 포기한 것은 아니다.
아픈 채로 놓아도 된다.
돌아보면서 떠나도 된다.
다만 떠나야 할 때가 왔음을 알면서도 과거의 이름표가 나를 대신 살아주기를 바라지는 말아야 한다.
손을 놓는다고 해서 걸어온 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꽉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손바닥이 다시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삶에서 가장 우아한 포기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포기가 아니다.
지나온 시간을 내 안에 온전히 남겨둔 채,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을 조용히 놓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비워진 손은 빈손으로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무언가를 쥐게 된다.
내게는 그것이 한 자루의 펜이었다.
그리고 그 빈손에서, 내 삶의 다음 문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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