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숭아나무, ‘개’ 자에 담긴 뜻을 생각하다

개복숭아나무 

 

소래산 자락으로 접어드는 길목, 여름빛이 파랗게 익어갈 즈음이었다. 낮게 드리운 나뭇가지마다 아기 주먹만 한 열매들이 푸른 몸통을 바짝 맞대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햇살을 받으며 제법 능청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녀석들은 개복숭아였다. 매끈한 피부나 분홍빛 살결 대신, 텁텁한 털을 온몸에 둘러쓴 채 야생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열매.

한참 동안 그 나무를 바라보던 아내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한마디를 던졌다.

“안 좋은 거엔 꼭 ‘개’ 자가 붙네. 개복숭처럼 말이야.”

그 허를 찌르는 직관에 나도 모르게 껄껄 웃고 말았다. 길가에 서서 던진 아내의 말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작게 파문을 일으켰다.

가만 생각하니 살면서 ‘개’ 자를 달고 다니는 말들이 제법 많았다. 개꿈, 개고생, 개소리…. 어째 하나같이 신세가 변변치 않다. 꿈도 그냥 꿈이면 될 것을 허망하면 개꿈이 되고, 고생도 죽도록 하면 개고생이 된다. 말도 영양가가 없어지면 졸지에 개소리가 된다. ‘개’라는 글자 하나가 앞에 붙었을 뿐인데 멀쩡하던 말의 팔자가 금세 사나워진다.

개복숭아도 그런 족속인가 싶어 다시 올려다보았다. 사람 손을 타고 매끈하게 자란 복숭아에 비하면 볼품은 없었다. 마트 과일 진열대에서 보던 복숭아는 발그레한 얼굴에 보송보송한 솜털까지 어쩐지 귀티가 난다. 손으로 슬쩍 눌러보고 잘 익은 놈을 골라 껍질을 벗기면 달큰한 물이 손가락을 타고 흐른다. 그런데 눈앞의 녀석들은 푸르뎅뎅한 얼굴에 털까지 거칠다. 한입 베어 물었다가는 입안부터 떫어질 것 같은 인상이다. 같은 복숭아 집안인데 누구는 백화점 진열대에 눕고 누구는 산비탈에서 ‘개’ 자까지 달고 산다. 팔자도 참 제각각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과수원의 잘난 복숭아가 농부의 약세례를 받고 비닐 꼬깔까지 쓰며 보호받을 때, 저 녀석은 누가 물 한 바가지 떠다주지 않아도 제 힘으로 여름을 건너왔을 것이다. 봄날의 늦서리도 맞았을 테고, 장맛비에 온몸이 젖기도 했을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는 밤이면 가지가 부러질 듯 흔들렸을 텐데도 이만큼 열매를 매달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거칠게 돋은 털도, 떫은맛도 괜히 생긴 것은 아닌 듯했다. 어쩌면 제 몸을 함부로 내어주지 않으려고 야생이 입혀놓은 갑옷인지도 모른다. 곱게 자라지는 못했어도 제 힘으로 버텨낸 흔적이라고 생각하니, 아까까지 볼품없어 보이던 열매들이 제법 당당해 보였다.

사람 사는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매끈하고 반듯한 것에 자꾸 눈길이 가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오히려 조금 모자라고 거친 것들일 때가 있다. 세월에 닳은 밥상 모서리나 손때 묻은 연장처럼, 흠집에는 흠집대로 지나온 시간이 묻어 있다. 사람 역시 반듯하게만 살아지는 것은 아니어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넘어지며 저마다 조금씩 떫은맛을 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라는 것도 팔자가 묘하다.

요즘 아이들은 아주 맛있는 걸 보면 ‘개맛있다’ 하고, 아주 좋거나 큰 이익을 봤을 때는 ‘개이득’이라 한다던가. 예전 같으면 타박받았을 ‘개’가 이제는 말 앞에 떡하니 붙어 ‘엄청’이라는 뜻으로 기세를 올린다. 천덕꾸러기였던 글자 하나가 세월을 돌고 돌아 감탄사가 된 셈이다. 그 생각을 하니 나무 위 개복숭아들도 조금 억울함을 풀었을 것 같아 혼자 웃음이 났다.

슬그머니 아내의 눈치를 보며 싱겁게 한마디를 보탰다.

“그럼 당신은 나한테 개잘하는 사람이네.”

“됐네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그런 소릴 하네.”

아내가 짐짓 핀잔을 주며 앞서 걸어갔다.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올라간 입꼬리가 햇살 아래서 훤히 보였다. 나는 들킨 사람처럼 헛기침을 하고 그 뒤를 따라갔다.

바람이 불자 개복숭아나무가 사각거리며 푸른 잎을 뒤집었다. 가지 끝에 매달린 열매들도 서로 몸을 부딪치며 흔들렸다. 여전히 푸르고, 여전히 거칠고, 아마 한입 깨물면 여전히 떫을 것이다.

아내는 몇 걸음 앞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 ‘개’ 자 하나를 달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름을 익혀가는 나무 밑을 오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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