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상처로 남는가: 별똥별 비유로 풀어낸 사랑과 자아 소모의 문학수필

겨울 새벽 네 시.
보일러가 멈춘 방 안은 숨이 보일 만큼 차가웠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더 이상 오지 않을 메시지 창이 떠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다.
입 밖으로 나온 두 음절은
공기를 데우지 못하고
오히려 내 안의 무엇을 식혀버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랑은 누군가를 얻는 일이 아니라,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각자의 궤도를 따라 산다.
습관, 자존심, 계획, 안전한 거리.

그 궤도 안에서는 다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궤도를 수정하는 선택이다.

별똥별이 제 자리를 벗어나
낙하를 택하는 것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자기 방향을 조금씩 틀어낸다.

그 순간부터 마찰이 시작된다.

시간을 내어주고,
감정을 내어주고,
미래의 자리를 비워둔다.

사랑은 감정 교환이 아니라
자아 일부의 이전(移轉)이다.

사랑은 자아의 일부를 태워 관계를 밝히는 행위다.
그 연소의 흔적이 곧 상처다.

사람들은 상처를 실패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상처는 파괴가 아니라
변형의 증거다.

사랑 이후의 나는
사랑 이전의 나와 동일하지 않다.

더 조심스러워졌거나,
더 깊어졌거나,
혹은 더 넓어졌을 것이다.

이 차이, 이 미묘한 어긋남이
사랑의 흔적이다.

별똥별은 떨어질 때 가장 밝다.

지면에 닿지 못하더라도
그 낙하의 궤적은
잠시 어둠을 휘게 만든다.

사랑도 그렇다.

결과와 상관없이
온몸을 다 써서 마음을 던진 순간,
인간은 가장 또렷해진다.

성공한 사랑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닿지 못한 사랑도
존재를 선명하게 한다.

나는 그 겨울 새벽 이후
완전히 같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상처가 나를 더 정확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디까지 내줄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싶은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상처는 직선이 아니다.
길고 휘어진 선이다.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한때 전속력으로 누군가를 향해
떨어졌던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빛은 안전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소모되었기에 아름답다는 것을.

사랑은 돌아갈 곳을 잃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을 끝까지 사용해보는 일이다.

우리는 완벽해질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 속에서
조금씩 깎이며 완성된다.

그래서 상처를 알면서도
다시 사랑을 선택한다.

빛이 낙하 속에서 완성되듯,
인간 역시 관계 속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관련글 보기

시를 쓰는 로봇: 인공지능과 문학이 만나는 순간

선비천사의 브런치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선비천사 브런치 바로가기

이 글이 마음에 남으셨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35-3671093 (방철호)


이 글들을 엮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 전자책 보러 가기 →

“사랑은 왜 상처로 남는가: 별똥별 비유로 풀어낸 사랑과 자아 소모의 문학수필”에 대한 2개의 생각

  1. 연륜을 느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의 시군요. 많은 체험으로 사랑에 대하여 달관자임네 하지만 사랑에 대해 무지하고 무능함으로 퉁처놓고 있는 60대인 나는 신선한 청량감을 느낀 시였습니다. 사랑에 대한 무뎌지지 않은 감각과 열정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해서지요. 사랑의 본질이 스스로 휨과 자기연소 그리고 돌아가지 못함이라는 시상의 흐름에 괘도를 이탈한 유성(별똥 별)의 비유가 압권이었는데요. 괘도를 이탈한 별이 지향하는 공간을 향해 칠흑같은 우주공간을 가르며 스스로를 태우는 빛으로 밝고 긴 획을 그으며 자유 낙하하여 가장 빛나는 존재감을 드러내듯, 자기를 완전히 연소한 사랑이 아름답다는 시의 주제를 잘 형상화 했다고 봅니다. 돈의 권력이 사람의 본질적 가치나 사랑 따위를 우습게 여기게 만드는 황금만능의 시대에 사랑의 본질적 가치가 소중함을 노래한 선생님의 사랑시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느낍입니다.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우리는 누구나 영생을 꿈꾸지만 나면 죽어 백 년을 살지 못하는 존재이고 따라서 만남도 언젠가 있을 이별을 예고하고 있지요. 이렇게 유한의 존재들인 우리 사랑 기준이 그 사랑이 길었고 짧았다는 것이 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물론 함께 빛발하는 사랑을 하며 해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모습이지만요. 그리고 사랑의 서사가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사랑의 정도만큼 그리워하는 것으로 완성될 듯하니 더욱 그렇지요. 길었다, 짧았다가 사랑의 기준이면 로미오 줄리엣 사랑도 백석과 자야 부인의 사랑도 인구에 회자되지 않겠지요.

    엮어 읽은 시
    열애 – 기울임 / 이명희

    누군가에게로 기운다는 것은 어쩌면
    일상의 균형을 깨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딘가, 어느 한 쪽이 경사가 지거나
    기울어져야 고이는 것이 있다.
    기울어져야만 고여서 출렁이는 것이 있다.

    아마도 지금 어딘가로, 누군가에게 기울어지고 있나 보다.
    이 출렁거림이 봄날의 기운처럼 퍼득거리고 있으니.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재홍 편저,2003

    답글
  2. ‘울림’님의 글을 읽으며, 제 시가 독자님의 깊은 사유를 거쳐 비로소 온전하게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같은 시대를 걸어오며 삶과 사랑의 유한함을 담담히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스스로를 연소시키는 순간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니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큰 보람을 느낍니다.

    엮어주신 이명희 시인의 ‘기울어짐의 미학’과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느끼는 자유’는 제 별똥별 비유에 더할 나위 없는 깊이를 더해주었네요. 황금만능의 거친 사막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사랑의 본질을 노래해야 하는 이유를 독자님의 글에서 다시금 배웁니다. 제 시에 가장 아름다운 ‘울림’을 더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답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