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머니|현대시로 풀어낸 어머니의 삶과 침묵

어느 페이지에서
나는 더 이상 읽지 못했다
문장은 있었으나
넘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부엌 쪽에서 들려온 소리
국자가 냄비에 닿는 짧은 금속음
어머니는
그 소리 하나로
저녁을 끝내고 있었다

겨울이 깊어도
당신은 추위를 말하지 않았다
말 대신
문틈을 막았고
새벽을 먼저 일으켰다

손은 늘 굽어 있었으나
무언으로 정확했다
등을 밀 때는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묻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머니가 대답할 차례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루에 남은 발자국
헹구지 않은 그릇 하나
불이 꺼지지 않은 새벽
그것들이
당신의 문장이었다

이제야 알겠다
어머니를 이해한다는 것은
떠올리는 일이 아니라
자리를 비워두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아직
그만큼
비우지 못했다

*관련글 보기

예순다섯이 되어 돌아보니, 서른의 인간관계는 아직 시작도 아니었다 | 인간관계가 달라지는 이유

방아쇠를 당긴 건 나였다 ― 삶을 뚫고 나아가는 한 발의 이야기

봄은 노랗게 투정부리며 온다

선비천사의 브런치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선비천사 브런치 바로가기

이 글이 마음에 남으셨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35-3671093 (방철호)


이 글들을 엮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 전자책 보러 가기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