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쇠를 당긴 건 나였다 ― 삶을 뚫고 나아가는 한 발의 이야기

 

 

아침이었다.

산 너머에서 솟은 햇살이 눈을 찔렀다. 나는 이불 속에서 한참 천장을 바라보았다. 일어나야 할 이유는 많았지만, 몸을 일으킬 힘은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는 이유가 부족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보다, 이유가 너무 많아 꼼짝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나도 그랬다.

무엇을 시작하면 실패할 것 같았다.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넘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넘어지지 않는 삶은 앞으로 가지도 않았다.

그날 아침, 마음속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찰칵.’

총을 든 것도 아니고 과녁이 보인 것도 아니었다. 다만 더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결심 하나가 장전되었다.

누가 나를 겨눈 적은 없었다. 나를 오래 붙잡아 둔 것은 세상의 총구가 아니라 내 안의 두려움이었다. 실패하면 어쩌나, 사람들이 비웃으면 어쩌나, 다시 상처받으면 어쩌나.

걱정은 늘 일보다 먼저 출근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창한 출발은 아니었다. 세수하고,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인생의 방아쇠는 대개 이런 사소한 동작 속에 숨어 있다.

문밖으로 나가자 찬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흙먼지 날리는 길을 지나고, 물안개가 걸린 강가를 걸었다. 표지판은 없었다. 목적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걸음을 내디뎠다.

무기력과 자기혐오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마음은 대단한 용기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늘 해야 할 가장 작은 일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결심을 총알에 비유한다. 빠르고 강하게 목표를 향해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총알이 아니다.

총알은 한번 발사되면 방향을 바꿀 수 없지만 사람은 가다가 멈출 수 있다. 잘못된 길이라면 돌아설 수도 있다. 쉬었다가 다시 출발할 수도 있다.

삶은 단 한 번의 발사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침마다 마음을 장전하고,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일에 가깝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낡아가면서도 앞으로 움직인다. 닳아가는 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인생의 바퀴처럼 말이다.

나도 많이 넘어졌다.

누군가의 말에 긁혔고,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했다. 계획은 빗나갔고 자신감은 자주 바닥에 떨어졌다. 때로는 내가 당긴 방아쇠가 나를 향한 것처럼 아팠다.

그럴 때마다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멈춘 자리에서 오래 머물수록 두려움은 더 커졌다. 두려움은 벽이 아니라 그림자였다. 돌아서면 따라왔고, 앞으로 걸으면 조금씩 뒤로 밀렸다.

살다 보면 쇠줄이 풀렸는데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할 때가 있다. 몸을 묶던 것은 사라졌지만 마음이 아직 묶여 있기 때문이다. 자유가 주어져도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를 가둔 방아쇠도 내가 당겼고, 나를 밖으로 밀어내는 방아쇠도 내가 당겨야 한다는 것을.

결단은 언제나 완벽한 확신 뒤에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확신이 없을 때 내딛는 한 걸음이 결단이다. 길이 보여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해야 길이 보일 때가 있다.

이제 나는 총알처럼 앞만 보고 달리고 싶지 않다.

잠시 멈춰 풍경을 바라보고, 잘못된 방향이면 고치고, 지친 사람을 만나면 걸음을 늦추고 싶다. 빠르게 도착하는 것보다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목표는 아직 멀다.

과녁도 선명하지 않다.

그래도 오늘의 손은 어제보다 조금 덜 떨린다. 삶이 나를 겨누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삶을 향해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방아쇠를 당긴 건 나였다.

그 한 발이 세상을 뚫은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래 닫혀 있던 내 마음의 문 하나를 열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손가락은 어느 삶의 방아쇠 앞에서 아직 머뭇거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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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쇠를 당긴 건 나였다 ― 삶을 뚫고 나아가는 한 발의 이야기”에 대한 2개의 생각

  1. 일인칭 화자 ‘나’가 여러 번 쓰인 시네요, 시인의 내면을 담은 이야기여서일 터이니, 시에서 선생님이 일을 대하는 태도,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시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뿐 아니라, 어디서든 몸을 밑천 삼아 노동을 팔아 스스로 살면서 짝도 살리며 어린 것들을 먹여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살가가는 이들이 또한 그러하겠다 생각했습니다. 시어 중, 사냥 무기 용어인 ‘방아쇠’, ‘탄환’을 사용하신 것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너나 없이 해 솟아 또 하루가 시작 되면 게으름 따위 걷어 차고 반사적으로 몸을 발딱 일으키어, 하나의 탄환이 되어 튕겨 집을 나서지요. 사랑하는 가족의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사냥을 나서는 거지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반드시 노획물과 함께 여야하는 거구요. 그것은 오늘 가족이 생존할 양식일 테니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존이 걸린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다면, 굴욕이나 상처 따위야 아무 일도 아니지요. 그렇게 누군가를 위하여 쓸모 있게 살아가는 것이 참 인생이라 여기며. 물론, 언제나 모든 결정은 짐진 자 스스로의 몫이였구요.

    이 시를 읽으면서 떠오른 시를 덧붙이겠습니다. 먼저, 화자가 아침 지하철 안에서 마주친, 근무지로 줄지어 가고 있는, 출근 노동자들에 대한 느낌을 쓴 시입니다.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냈을까

    저 무표정한 얼굴 속 어디에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 속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ㅡ김혜순 ‘별을 굽다’ 중 일부

    그리고 다음 시는 보일러 공으로 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의 내면을 그린 시도 생각 났습니다.

    화염 경배(전문) / 이면우

    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황염 주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씁쓸함도 따라 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이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답글
    • 울림 님, 보내주신 깊은 시선과 마음에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제 안의 다짐과 결단을 담아 내려간 글이었는데, 울림 님의 글을 읽으며 이 시가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방아쇠’를 당겨 스스로 ‘탄환’이 되어 튕겨 나가는 매일 아침의 발걸음. 그것이 나 자신을 향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의 삶을 지키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는 이 땅 모든 노동자들의 거룩한 출근길이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셔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가족의 생존 앞에서는 굴욕도 상처도 기꺼이 삼켜내며, 언제나 모든 결정을 묵묵히 짊어지는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탄환’들에게 저 역시 깊은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덧붙여 소개해 주신 김혜순 시인의 *‘별을 굽다’*와 이면우 시인의 *‘화염 경배’*는 제 시의 부족한 여백을 가득 채워주는 너무나 귀한 선물이네요.

      깊은 땅속 밀물처럼 밀려가는 붉은 흙 가면 같은 얼굴들, 그리고 가족의 밥과 웃음을 위해 뜨거운 연소실 불길 속으로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는 보일러 공의 고백이 제 마음에도 뜨겁게 와닿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뜨거운 불길을 견디며 스스로를 구워내고 있는 것이겠지요.

      글을 쓰는 보람과 살아가는 힘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귀한 감상과 시 선물,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울림 님의 매일의 출근길과 일상에도 늘 지치지 않는 탄환 같은 에너지가, 그리고 끝내 가고 싶으신 곳에 닿는 평온함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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