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이었다.
산 너머 햇살이 눈을 찌른다.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쉰다.
‘찰칵.’
속에서 뭔가
정확하게 준비됐다.
누구도 나를 겨눈 적 없다.
나는
내가 갈 방향을 스스로 정했고,
방아쇠를 당긴 것도
나였다.
그 순간부터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알의 총알처럼.
표정 없이
감정 없이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앞만 보고 달린다.
흙먼지 날리는 마당을 지나
물안개 낀 강가를 건너고
답답한 공기처럼 무거운
사람들의 말과 시선을 통과한다.
길은 명확하지 않다.
표지판도 없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향하고 싶은 곳이 있었고,
그게 있다는 걸
나는 믿었다.
산을 넘고
구불구불한 능선을 따라
끝끝내,
작은 언덕 하나.
모든 소음이 멎는 곳.
거기까지
나는 가고 싶었다.
달리면서 생각은 스친다.
두려움도, 후회도
머릿속에 총알처럼 튄다.
하지만 어깨를 움츠릴 새도 없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죽음을 피한다기보다
삶을 뚫고 가는 기분이다.
넘어지고,
긁히고,
그래도 계속 가는 나.
결국 내가 알게 된 건 이거다.
총알은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
살면서 받은 상처와
지금도 버티고 있는 몸.
그 모든 걸 가지고
끝까지 나아가는 것.
그게 살아 있는 탄환이다.
방아쇠를 당긴 건
누구도 아닌 나였다.
목표는 멀고
과녁은 흐리지만,
나의 손은
분명히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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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화자 ‘나’가 여러 번 쓰인 시네요, 시인의 내면을 담은 이야기여서일 터이니, 시에서 선생님이 일을 대하는 태도,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시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뿐 아니라, 어디서든 몸을 밑천 삼아 노동을 팔아 스스로 살면서 짝도 살리며 어린 것들을 먹여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살가가는 이들이 또한 그러하겠다 생각했습니다. 시어 중, 사냥 무기 용어인 ‘방아쇠’, ‘탄환’을 사용하신 것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너나 없이 해 솟아 또 하루가 시작 되면 게으름 따위 걷어 차고 반사적으로 몸을 발딱 일으키어, 하나의 탄환이 되어 튕겨 집을 나서지요. 사랑하는 가족의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사냥을 나서는 거지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반드시 노획물과 함께 여야하는 거구요. 그것은 오늘 가족이 생존할 양식일 테니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존이 걸린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다면, 굴욕이나 상처 따위야 아무 일도 아니지요. 그렇게 누군가를 위하여 쓸모 있게 살아가는 것이 참 인생이라 여기며. 물론, 언제나 모든 결정은 짐진 자 스스로의 몫이였구요.
이 시를 읽으면서 떠오른 시를 덧붙이겠습니다. 먼저, 화자가 아침 지하철 안에서 마주친, 근무지로 줄지어 가고 있는, 출근 노동자들에 대한 느낌을 쓴 시입니다.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냈을까
저 무표정한 얼굴 속 어디에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 속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ㅡ김혜순 ‘별을 굽다’ 중 일부
그리고 다음 시는 보일러 공으로 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의 내면을 그린 시도 생각 났습니다.
화염 경배(전문) / 이면우
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황염 주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씁쓸함도 따라 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이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울림 님, 보내주신 깊은 시선과 마음에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제 안의 다짐과 결단을 담아 내려간 글이었는데, 울림 님의 글을 읽으며 이 시가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방아쇠’를 당겨 스스로 ‘탄환’이 되어 튕겨 나가는 매일 아침의 발걸음. 그것이 나 자신을 향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의 삶을 지키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는 이 땅 모든 노동자들의 거룩한 출근길이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셔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가족의 생존 앞에서는 굴욕도 상처도 기꺼이 삼켜내며, 언제나 모든 결정을 묵묵히 짊어지는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탄환’들에게 저 역시 깊은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덧붙여 소개해 주신 김혜순 시인의 *‘별을 굽다’*와 이면우 시인의 *‘화염 경배’*는 제 시의 부족한 여백을 가득 채워주는 너무나 귀한 선물이네요.
깊은 땅속 밀물처럼 밀려가는 붉은 흙 가면 같은 얼굴들, 그리고 가족의 밥과 웃음을 위해 뜨거운 연소실 불길 속으로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는 보일러 공의 고백이 제 마음에도 뜨겁게 와닿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뜨거운 불길을 견디며 스스로를 구워내고 있는 것이겠지요.
글을 쓰는 보람과 살아가는 힘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귀한 감상과 시 선물,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울림 님의 매일의 출근길과 일상에도 늘 지치지 않는 탄환 같은 에너지가, 그리고 끝내 가고 싶으신 곳에 닿는 평온함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