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육백마지기 여행|해발 1,256m 하늘 위의 밭을 찾아 180km

 

인제에서 평창 육백마지기까지 180km를 달렸다. 세 시간이 걸렸다.

거리보다 길이 멀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도로는 산속으로 파고들었다. 동막골 근처를 지나면서부터 산은 더욱 깊어졌다. 산 하나를 넘으면 또 산이었다. 목적지가 유명 관광지라기보다 첩첩산중 어딘가에 숨겨진 마을처럼 느껴졌다.

산 아래에서 육백마지기까지 다시 10km 남짓을 올라갔다.

길은 산허리를 붙잡고 지그재그로 이어졌다. 한 굽이를 돌면 또 한 굽이가 기다렸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마을은 사라지고 산만 남았다.

마지막 약 2.5km는 비포장도로였다.

앞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솟았다. 먼지는 한동안 길 위에 머물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창문을 닫고 속도를 줄였다. 관광지를 찾아가는 길이라기보다 산꼭대기의 밭을 찾아가는 옛길 같았다.

그 길이 끝나자 뜻밖에도 하늘이 열렸다.

산꼭대기인데 들판이 있었다.

평창 육백마지기는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정상부에 펼쳐진 고원이다. 청옥산은 해발 1,256m다. 정상부에 비교적 넓고 평탄한 땅이 형성되어 있다.

육백마지기라는 이름도 이 넓은 땅에서 나왔다. 볍씨 육백 말을 뿌릴 수 있을 만큼 넓은 곳이라 하여 육백마지기라 불렸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를 알고 평원을 바라보니 풍경이 달라졌다.

지금은 평창 가볼 만한 곳이자 샤스타데이지 명소로 알려졌지만, 이곳은 본래 농사의 땅이었다. 높은 산 위에서 고랭지 농업이 이루어졌다.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해 이 길을 올랐을 것이다.

지금처럼 자동차가 쉽게 오르지 못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산 위의 땅을 일구었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면 작물을 돌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풍경이라고 부르는 곳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그 옛 밭 위로 지금은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서 있다.

내 눈에 들어온 것만 열다섯 기 안팎이었다. 능선을 따라 떨어져 선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고원의 바람을 받아 천천히 돌고 있었다.

멀리 있을 때는 풍경의 일부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고개를 한껏 들어야 할 만큼 컸다.

날개는 서두르지 않았다.

바람이 오면 돌고, 바람이 지나가면 느려졌다.

그 뒤로 산이 겹쳤다.

산 하나 뒤에 또 하나가 있었고, 그 뒤로 다시 산이 이어졌다. 가까운 능선은 짙었고 먼 능선은 흐렸다. 산들은 거리를 두고 겹치면서 수묵화처럼 옅어졌다.

보통 이런 첩첩산중의 풍경을 만나려면 몇 시간을 걸어 산에 올라야 한다.

육백마지기는 다르다.

자동차로 해발 1,200m가 넘는 곳까지 올라와 차에서 내려 몇 걸음만 걸어도 깊은 산의 시선을 빌릴 수 있다. 높은 산에 힘들게 올라야 만날 것 같은 풍경을 자동차로 올라와 내려다보는 곳이다.

그것이 내가 느낀 육백마지기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하지만 내가 찾아간 날의 육백마지기는 사진 속 고요한 고원과는 달랐다.

차들이 계속 올라왔다. 오토바이도 뒤따랐다. 작은 주차장은 이미 붐볐다. 전망 좋은 곳에는 차를 세워두고 오래 머물려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육백마지기가 한때 ‘차박의 성지’로 불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산 아래의 불빛에서 멀고 시야가 트여 있으니, 밤이 오면 하늘도 넓을 것이다. 차 한 대 세워두고 해가 지는 산과 별을 보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다만 현재는 주차장 내 야영과 취사, 불을 피우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육백마지기를 찾는다면 과거의 차박 명성보다는 현재의 이용 수칙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산 위에서는 공사도 한창이었다.

장비가 움직이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자연 그대로의 고원을 기대했다면 조금 낯선 풍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지금의 육백마지기였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사람들이 올라왔다. 이후에는 풍경과 별을 찾아 자동차가 올라왔다. 이제는 더 많은 관광객을 맞기 위한 변화가 산 위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한 장소의 시간이 겹쳐 보였다.

밭을 일구던 사람과 풍력발전기, 차박을 찾아온 자동차와 관광객, 그리고 공사 장비가 같은 고원 위에 있었다.

육백마지기의 유명한 샤스타데이지는 이날 볼 수 없었다.

샤스타데이지는 보통 6월에서 7월 사이 육백마지기의 초원을 하얗게 물들인다. 흰 꽃잎과 노란 꽃술 때문에 ‘계란프라이꽃’이라는 별명도 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육백마지기는 그 꽃으로 가득했다.

내가 만난 육백마지기에는 꽃 대신 흙먼지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쉽지는 않았다.

꽃이 만발한 계절이었다면 나는 꽃만 보았을지도 모른다. 꽃이 없으니 오히려 땅이 보였다.

왜 이곳을 육백마지기라고 불렀는지 알 것 같은 넓은 땅이었다.

그 위에서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고, 지금은 풍력발전기의 긴 날개가 돌아간다. 한쪽에서는 공사가 진행되고 관광객의 자동차가 계속 올라온다.

여행지는 사진 속 한 장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쓰임도 달라진다.

육백마지기도 그랬다.

해발 1,256m 청옥산 정상부의 넓은 고원. 볍씨 육백 말을 뿌릴 만큼 넓다고 해서 이름 붙은 땅. 고랭지 농업의 터전이었고, 지금은 풍력발전기와 샤스타데이지, 첩첩산중의 전망으로 알려진 평창의 여행지다.

그것이 자료에서 만나는 육백마지기라면, 내가 만난 육백마지기는 조금 달랐다.

180km를 달려온 길이었다.

세 시간이 걸렸다.

산 아래에서 다시 10km 남짓 굽이굽이 올라왔고, 마지막 2.5km에서는 앞차가 일으킨 흙먼지를 따라왔다.

그 끝에 산보다 높은 들판이 있었다.

열댓 기쯤 되는 풍력발전기가 바람 속에서 돌고 있었고, 그 너머로 산들이 겹겹이 내려앉아 있었다.

한참 바라보다 다시 차에 올랐다.

내려가는 길도 같은 비포장도로였다.

앞차가 지나가자 다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룸미러 속에서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하나씩 산 뒤로 사라졌다.

한 굽이.

그리고 또 한 굽이.

마침내 마지막 날개까지 보이지 않았다.

산 위에는 오래전부터 밭이 있었다.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해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갔고, 이제 우리는 그곳의 풍경을 보기 위해 같은 산을 오른다.

올라가는 이유만 달라졌다.

돌아갈 길은 다시 시흥으로 180km였다.

 

*관련글 보기

방아깨비의 외다리 춤|잃어버린 것들로 다시 균형을 배우는 삶의 문학수필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 아내를 두고 먼저 올라간 날

예순다섯이 되어 돌아보니, 서른의 인간관계는 아직 시작도 아니었다 | 인간관계가 달라지는 이유

 

선비천사의 브런치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선비천사 브런치 바로가기

이 글이 마음에 남으셨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35-3671093 (방철호)


이 글들을 엮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 전자책 보러 가기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