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무료 체력단련실에서 만난 고향의 변화|폭염 속 여름 여행 문학 정보 수필

 

폭염 경보가 내려진 아침이었다.

도로 위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자동차 계기판의 바깥 온도는 35도를 넘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지만, 창밖의 여름은 뜨거움을 숨기지 못했다.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고향 강화도로 향했다.

나는 1990년대 초 고향을 떠났다. 이후 명절과 집안일이 있을 때마다 강화도를 찾았지만, 대부분은 바쁘게 다녀가기만 했다. 이번만큼은 조금 달랐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고향을 바라보고 싶었다.

강화도에 들어서자 도시의 풍경은 어느새 사라졌다.

짙푸른 산등성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아래로는 초록빛 논이 끝없이 이어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벼는 한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다시 일어섰다. 여름은 소리를 내지 않고도 살아 있다는 것을, 그 풍경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이 논길을 뛰어다녔다.

장화를 신고 논두렁을 걷다가 미끄러져 흙투성이가 되기도 했고, 매미를 쫓아 산기슭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때는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지 않았던 풍경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가장 먼저 눈길을 붙잡았다.

시간은 사람을 떠나게 만들지만, 풍경은 기다릴 줄 안다.

점심때가 되자 여동생이 준비한 흑염소탕이 상에 올랐다.

김이 피어오르는 뚝배기에서는 들깨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자 뜨거운 온기가 목을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밖의 폭염과는 다른 온도였다.

예전에는 여름 보양식이라고 하면 개고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식문화와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지금은 흑염소탕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흑염소는 단백질과 철분, 칼슘 등을 함유해 여름철 기력 보충 음식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날 기억에 남은 것은 영양 성분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오빠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었던 여동생의 마음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여동생이 웃으며 말했다.

“오빠, 운동하러 가자.”

순간 웃음이 났다.

이 더위에 운동이라니.

시원한 카페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여동생은 이미 차 시동을 걸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송해면 체력단련실이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예상이 바뀌었다. 러닝머신과 근력운동 기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실내는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운동을 하는 주민들의 표정은 자연스러웠다. 누군가는 천천히 걷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나도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울 대신 논이 있었다.

창밖으로는 햇빛을 머금은 벼가 바람결에 흔들리고, 그 너머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도시에서는 운동을 하며 벽을 바라보거나 휴대전화를 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계절이 가장 큰 화면이었다.

운동은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운동을 마친 뒤 이용료를 물으려 하자 여동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료인데?”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강화군에는 주민들이 가까운 생활권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면 단위 체육시설이 운영되는 곳이 있다. 주민 건강을 위한 생활 기반 시설이다. 거창한 건물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복지는 멀리 있는 제도가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문득 고향을 떠나던 날이 떠올랐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도시로 향했던 젊은 날의 나는, 농촌은 발전이 더딘 곳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오래전 기억에 머물러 있었다.

도로는 좋아졌고, 생활환경은 편리해졌다.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과 체육시설도 조금씩 늘어났다. 화려한 고층빌딩은 없지만,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반은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농촌의 발전은 건물의 높이로 증명되지 않는다.

주민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세대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

자연과 일상이 조화를 이루는 생활.

그것이 오늘날 농촌이 보여주는 또 다른 경쟁력이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석양이 논 위에 길게 내려앉았다. 오후 내내 흔들리던 벼는 붉은빛을 머금고 조용히 서 있었다. 아침에 보았던 같은 풍경인데도 전혀 다른 모습처럼 느껴졌다.

아마 달라진 것은 풍경이 아니라 나였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고향은 추억 속에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향은 추억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사람들의 삶을 품으며 지금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폭염 속에서 찾은 강화도는 더위를 견디게 해 준 여행지가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자연과, 시대에 맞게 변해 가는 삶이 함께 숨 쉬는 곳이었다.

그날 내가 본 것은 무료 체력단련실 하나가 아니었다.

고향이 사람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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