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수필157

봄은 노랗게 투정부리며 온다 쳇, 쳇, 쳇—일꾼들의 손놀림은왜 이리 더딘지,햇살에 눈꺼풀이 간질간질하품처럼 스르르 열리다그만 먼저 나와버렸지. 조금 이른 걸까.바람은 자꾸 치마를 들추고,노란 가방에 노란 옷,병아리 같은 아이들이재잘재잘 몰려온다.뭐가 그리 신나는 걸까. 쳇, 쳇, 쳇—화장품 냄새가 자꾸 코를 찌르고땅벌도, 나비도 보이질 않네.목련 그늘진 울타리 아래,우리는 서로 기대어먼저 주둥이가 터졌어 쳇, 쳇, 쳇—봄날 오후,삐죽삐죽노랗게 피어나는개나리의 작은 투정들. *관련글 보기https://sunbicheonsa.com/62 봄비, 자벌레의 꿈에 물들다봄 하늘을 훔쳐간 구름이어디선가 조리개를 열었다.높새바람 따라물줄기들이 사뿐히 쏟아진다. 삭정이 틈 사이,겨울을 견딘 껍질이 슬며시 벌어지고그 아래서 작은 신음이 움튼다. .. 2025. 4. 20.
방아쇠를 당긴 건 나였다 아침이었다.산 너머 햇살이 눈을 찌른다.나는 반사적으로숨을 크게 들이쉰다.‘찰칵.’속에서 뭔가정확하게 준비됐다. 누구도 나를 겨눈 적 없다.나는내가 갈 방향을 스스로 정했고,방아쇠를 당긴 것도나였다. 그 순간부터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한 알의 총알처럼. 표정 없이감정 없이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앞만 보고 달린다. 흙먼지 날리는 마당을 지나물안개 낀 강가를 건너고답답한 공기처럼 무거운사람들의 말과 시선을 통과한다. 길은 명확하지 않다.표지판도 없다.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내가 향하고 싶은 곳이 있었고,그게 있다는 걸나는 믿었다. 산을 넘고구불구불한 능선을 따라끝끝내,작은 언덕 하나.모든 소음이 멎는 곳. 거기까지나는 가고 싶었다. 달리면서 생각은 스친다.두려움도, 후회도머릿속에 총알처럼 튄다.하지만 어.. 2025. 4. 20.
선인장 연서 한 번쯤은 마주친 적 있을 거예요.작은 화분 속에 조용히 앉아 있는 선인장. 그 모습은 늘 같아 보여도,그 안에는 사막을 견디는 강인함과아무도 모르게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 숨어 있어요. 사막 한가운데 선 선인장은 깊은 뿌리가 없어요.모래 위에 겨우 뿌리 몇 가닥을 내리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태양이 칼처럼 내리쬐어도,거센 바람이 모래를 휘감아도,그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두 팔처럼 뻗은 가지를 하늘로 들어 올린 채오늘도 조용히 말하는 듯해요. "나는 괜찮아. 나는 살아 있어." 낮에는 딱딱했던 선인장.하지만 밤이 되면, 별빛 아래 이슬을 머금어요. 그 이슬은 어쩌면,누군가를 향해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사랑의 흔적일지도 몰라요. 이 선인장의 이름은 ‘백년초’.100년을 살아도 변치 않는 마음이라는 뜻이에요... 2025. 4. 20.
벚꽃은 지고, 사랑은 남았다 올해도 벚꽃은 어김없이 피었다.언제나 그랬듯 갑작스럽게, 그리고 눈부시게.거리마다 연분홍빛이 흐드러졌고, 사람들의 얼굴엔 봄이 번졌다.그 환한 꽃들 사이를 함께 걷고 싶었다. 당신과.아무 말 없이 손잡고, 꽃잎 사이로 웃음소리 퍼뜨리며 그렇게.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올해 봄엔, 벚꽃이 피면 당신과 함께 걸으리라.꽃향기를 함께 맡고,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당신만을 바라보리라.하지만 그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너무 무심했던 걸까.너무 당연하게 여긴 걸까.벚꽃이 피는 것도, 당신이 곁에 있는 것도.바쁘다는 이유로, 괜찮을 거라는 안일함으로나는 당신의 마음에 피어난 작은 꽃들을 보지 못했다. 어느새 봄은 깊어졌고,꽃은 어느샌가 지고 말았다.꽃잎은 말이 없다.지며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당신도.. 2025. 4. 19.
신천동 샌님, 산에서 숨을 고르다 샌님은 고등학교 선생님이다.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간다.마음은 늘 시골을 그리워하지만도시를 떠날 용기는 없다. 그저 가족과 소박하게알콩달콩 살고 싶은 사람이다. 술은 즐기지 않지만술자리의 분위기는 좋아한다.삶은 늘 무겁고,자신은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예수처럼 참지도 못하고,부처처럼 내려놓지도 못하고,공자처럼 예를 다하려다혼자 상처받는다. 답답한 날엔 베란다 문을 연다.그 앞에 소래산이 있다.산은 말없이 거기 있다.도시 속에서 조용히, 묵묵히. 결국 신발을 신고산을 향해 걷는다. 처음엔 힘들다.헉헉거리며 올라간다. 하지만 산은 안다.힘들 땐 평지를 내주고,쉴 만하면 다시 경사를 준다. 산은 도시 사람들의 고향이다.누구든 말없이 안아준다.아이도, 어르신도,상처받은 이도산에 올라 숨을 고른다. 샌님도 .. 2025. 4. 18.
🌲 비탈 위의 소나무 절벽 위, 바람이 스칠 때마다 외로움은 몸 안에 스며들었다. 이슬 머금은 바람이었지만, 그 안엔 살아온 날들의 거칠고 짠 흔적이 녹아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 이 벼랑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나는 오래전부터 조금씩 배워왔다. 활엽수들이 햇살을 나누며 자라날 때, 나는 그늘진 곳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렸다. 남들은 지나치기 바쁜 황무지. 메마른 흙과 부서진 돌 틈, 겨우 숨 쉴 수 있는 그 공간에 내 삶은 조용히 자리 잡았다.어쩌면, 그것은 우리 집안이 늘 살아온 방식이었다.누군가는 피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늘 더 험한 길을 스스로 선택해왔다. 타인과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모진 바람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으려는 싸움.눈.. 2025.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