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는 언제나 사람의 목소리와 파도의 숨결이 뒤섞이는 자리다.
파도는 쉼 없이 밀려오지만, 그 자리에 늘 머무는 듯 보인다.
사람도 그렇다.
떠나고 돌아오며 흔들리지만, 결국은 남는 자리가 있다.
소래 포구를 찾을 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문다.
비릿한 내음은 바닷물의 냄새만이 아니다.
그것은 바다를 향해 평생을 던져온 사람들의 땀과 체취다.
허리를 굽히고 손끝이 다쳐도 매일같이 그물을 당겨 올리는 사람들의 생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파도에 오래 씻긴 돌멩이 같은 단단함이 묻어 있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따라간 포구의 풍경.
거대한 새우젓 통에서 넘쳐흐르던 소금물,
어깨보다 높게 쌓인 생선 상자,
손님을 향해 외치던 상인의 목소리.
그 사이에서 어머니는 값 흥정을 하며 눈빛으로 치열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손에 쥔 오징어 한 마리가 아직 살아 꿈틀거리는 걸 보고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날의 냄새와 소리, 촉감이 뒤섞여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오늘날 소래 포구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갓 잡아 올린 해산물을 사러 오고,
누군가는 싱싱한 횟감을 찾아오며,
또 다른 누군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사러 이곳을 찾는다.
포구의 비린내와 삶의 냄새는 오히려 그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는 힘이다.
냄새는 불편함이 아니라 기억을 깨우는 신호가 된다.
경매장은 여전히 활기로 가득하다.
빠르게 손짓하는 중개인,
흥정을 두고 고개를 저으며 웃는 상인,
옆에서 뛰노는 아이들.
죽음을 다루는 자리이지만, 삶은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살아 있다.
사람들은 결국 이 역설 속에서 힘을 얻는다.
나는 문득 내 삶을 돌아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허리를 굽혀 챙기는 작은 일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남겨지는 피로.
때때로 그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서 나는 분명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 있다.
빈 그물을 올리는 날도 있지만,
그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소래 포구의 저녁은 붉다.
석양은 바다 위로 흘러내리고, 갈매기들이 그 불빛을 따라 날아간다.
사람들의 얼굴에도 같은 빛이 번진다.
붉은 빛 속에서 땅과 하늘, 바다와 사람이 한순간 같은 색으로 섞인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바다 냄새를 들이마신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발걸음을 멈춘다.
삶이 무엇인지, 왜 매일같이 그물을 던지는지,
대답은 끝내 얻지 못한다.
다만 석양과 바다가 천천히 하나가 되어가는 풍경이,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잠시 후 바닷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묵은 비린내를 다른 냄새로 바꿔 놓는다.
소금기 어린 바람 속에 어릴 적 울음소리, 부모의 손길, 시장의 소란이 함께 실려온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우리가 찾는 것은 생선도, 횟감도, 값싼 흥정도 아니다.
결국은 잊히지 않는 어떤 장면, 바다와 함께 남아 있는 추억 한 조각이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생각한다.
언젠가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면, 오늘의 풍경 또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바다는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가 흘려보낸 날들을 조용히 받아 적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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