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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놀던 시절, 천렵과 친구들의 이야기” 여름이 와도 마음은 더 이상 뜨겁지 않다.햇살은 여전하지만, 가슴 속 열기는 사라졌다.그 뜨거움은 아마도, 천렵과 함께 떠난 것 같다. 우리 동네에는 개울이 있었다.작고 맑은 물길이었지만, 그 안에 세계가 있었다.친구들과 눈빛만 마주치면 “천렵 가자”는 말이 나왔다. 족대가 없으면 손으로 잡았다.붕어, 미꾸라지, 빠가사리.물은 차가웠고, 우리는 뜨거웠다. 개울가에서 바로 불을 지폈다.작은 솥에 고추장, 국수, 들에서 딴 채소.그 국물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솥이 끓는 동안 우리는 웃었다.땀에 젖고 흙투성이가 돼도서로의 얼굴은 환했다. 그 맛은 혀보다 마음에 남았다.소금보다 웃음이 간을 맞췄고,스프보다 추억이 풍미를 더했다. 얼마 전 아파트 여름 축제에서고무 수조에 물을 채우고,아이들이 작은 .. 2025. 6. 13.
흘러가되 사라지지 않는 삶을 위하여 나는 가끔 구름이 되고 싶다.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밀도의 존재로. 사람들은 매일 시간에 쫓기고 장소에 묶인다.스스로 만든 틀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구름은 다르다.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하늘을 유영한다.느리게 흐르되 지루하지 않고,고요히 머무르되 존재를 숨기지 않는다.그 유연함이 부럽다. 예전에 직장에서 큰 실수를 한 날,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회색빛 구름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고,그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위로가 됐다.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내 감정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그때 처음으로‘구름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삶의 틀을 벗어나고 싶었던첫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구름은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그 모습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한다.양 떼 같기도.. 2025. 6. 12.
“오늘은 내려가지만, 내일은 올라간다”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아.” 저녁밥을 먹다 말고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흔한 말이지만, 이상하게 가슴을 울렸다.그 말은 삶을 통과한 사람만이 꺼낼 수 있는 말투로,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우리는 매일 고스톱을 친다.별 의미 없을 것 같은 그 놀이에서, 이상하게도 인생이 보인다. 며칠은 내가 연승하고, 또 며칠은 아내가 몰아친다.패가 착착 들어맞을 때도 있고, 어쩌면 오늘은 아무리 해도 안 풀리는 날이기도 하다. “운도 흐름이 있어. 놓칠 땐 그냥 흘려보내야 해.”아내는 지고도 웃으며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인생을 떠올린다.진짜로 잘나가던 사람들이 있었다.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그들.그런데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본다.돈도, 인기마저도 순식간에 사.. 2025. 6. 11.
다시 나를 껴안다 – 어깨 석회건염이 내게 가르쳐준 것 언제부터였을까.왼쪽 어깨가 묵직하게 말 없이 아팠다.단순한 뻐근함이라 여겼다. 나이 들면 흔한 일이라며 넘겼다. 그러다 어느 새벽, 날카로운 통증이 어깨를 찢었다.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불 속에서 소리 없이 신음했다.병원에서는 ‘석회성 건염’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이름.몸이 보내온 경고였고, 나는 그걸 너무 오래 무시해왔다.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었다.언제나 가족 먼저, 일 먼저였다.‘나는 괜찮다’는 말로 나를 밀어붙였다.가장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런데, 이번에는 참는다고 해결되지 않았다.팔이 올라가지 않았고, 양치도 혼자 힘들었다.한 벌 셔츠를 입는 일조차 힘에 부쳤다. 치료실 한쪽,어깨에 찜질팩을 얹고 벽을 바라보던 그 순간,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은 왜 이렇게까.. 2025. 6. 10.
오뚝이는 끝까지 일어서야만 할까 어릴 적, 오뚝이 장난감을 마주했을 때 나는 조금 슬퍼졌다.누가 봐도 꿋꿋해 보이는 그 몸짓이, 내 눈엔 왠지 억지스러운 복종처럼 보였다. 아무리 밀어도, 아무리 비틀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그 모습이 도리어 안쓰럽기까지 했다.그때 나는 생각했다.‘왜 꼭 일어나야 하지?’ 시간이 흘러 나는 반성을 습관처럼 하게 됐다.실수했을 때만이 아니다.누군가 기분이 나빠 보이면 내가 뭘 잘못했나 고민하고,혼자 있는 밤이면 괜히 오늘 하루를 후회하며 마음속 무릎을 꿇었다. 그 반성이 나를 성장시켰을지도 모르지만,동시에 나를 잠식해갔다.어느 날 문득, 나는 내 안의 팔과 다리가녹아내린 것처럼 축 처져 있다는 걸 느꼈다. 오뚝이처럼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는 일상이 반복될수록,나는 점점 더 ‘일어나는 이유’를 잃어갔.. 2025. 6. 9.
“처음처럼 살고 있나요? 익숙함에 무뎌진 나에게” 몇 달 만에 차를 세차했다.거품을 묻혀 유리창을 닦는데,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90년대 초.처음 내 차를 샀을 때였다.주말이면 반나절을 들여 차를 닦고,왁스를 내며 빛나는 차체를 보며 흐뭇해했다.그때 나는, 차를 사랑했다. 지금은 다르다.먼지가 내려앉아도 그냥 탄다.금세 더러워질 텐데 뭐, 하고 넘긴다.처음의 애정은 익숙함 속에 무뎌졌다. 이건 차뿐만이 아니다. 아내도 마찬가지다.연애 초, 꽃다발을 자주 건넸다.작은 선물 하나에 설렜고, 함께 걷는 길이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아내 생일도 놓치고,퇴근길 케이크도 사라졌다.“괜찮아?” 대신 “약 먹었어?”로 대화가 줄었다. 그녀가 더 소중해졌는데, 표현은 더 인색해졌다.마음은 있는데, 행동은 줄었다.사랑도 익숙함에 무뎌지는 걸까. 그래서일까.어딜 가도 ‘.. 2025.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