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만에 차를 세차했다.
거품을 묻혀 유리창을 닦는데,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90년대 초.
처음 내 차를 샀을 때였다.
주말이면 반나절을 들여 차를 닦고,
왁스를 내며 빛나는 차체를 보며 흐뭇해했다.
그때 나는, 차를 사랑했다.
지금은 다르다.
먼지가 내려앉아도 그냥 탄다.
금세 더러워질 텐데 뭐, 하고 넘긴다.
처음의 애정은 익숙함 속에 무뎌졌다.
이건 차뿐만이 아니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연애 초, 꽃다발을 자주 건넸다.
작은 선물 하나에 설렜고, 함께 걷는 길이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내 생일도 놓치고,
퇴근길 케이크도 사라졌다.
“괜찮아?” 대신 “약 먹었어?”로 대화가 줄었다.
그녀가 더 소중해졌는데, 표현은 더 인색해졌다.
마음은 있는데, 행동은 줄었다.
사랑도 익숙함에 무뎌지는 걸까.
그래서일까.
어딜 가도 ‘처음처럼’이라는 말이 보인다.
문구도, 광고도, 다짐도.
그 말엔 뭔가가 있다.
처음은 귀찮음보다 설렘이 앞선다.
의무보다 기쁨, 계산보다 진심이 담긴다.
세차를 하며 나도 닦였다.
차가 다시 반짝이듯, 내 마음도 조금 맑아진 듯했다.
사랑도, 삶도
닳아 없어지기 전에 자주 닦아야 한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처음처럼 대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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