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고도 남은 빛(은하수)

밤의 골짜기로 들어서면
지워진 문장들이 돌아온다.
칠판 뒤에 쌓인 백분(白粉).
지우개가 지나갈 때마다
문장은 흰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누군가 적었고
누군가 지웠다.
그러나 지워진 것은
사라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밤이 깊어지자
백분은 검은 허공으로 떠올랐다.
한때 이름이었던 것들,
끝내 읽히지 못한 것들이
희고 작은 점으로 흩어졌다.
멀어진 점들이 서로 이어져
밤의 가장 깊은 곳에
한 줄의 길을 냈다.
우리는 그 길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새벽이 오기 전
검은 칠판 같은 하늘 아래
손바닥을 펼쳤다.
밤새 내린 백분 한 알이
손금 사이에 박혀 있었다.
아무리 털어도
지워지지 않는,
아직 쓰이지 않은
한 점의 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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