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내가 지나간 자리에 문장이 남았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문장이 남았다

 

새벽 다섯 시 반, 베란다 창문에 이마를 댄다.

단지의 아파트들은 아직 짙은 푸른빛의 침묵 속에 잠겨 있다. 자동차의 시동음도, 출근길의 바쁜 발걸음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이다.

하루의 궤도에서 잠시 비껴난 듯한 어스름.

나는 이 시간이 좋다.

돌아보면 평생 무언가를 쓰고 기록하며 살아왔다. 그때는 세상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믿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도 어떤 섭리가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지갑에는 직함이 찍힌 명함이 들어 있었고, 아침이면 나를 찾는 전화가 울렸다.

그것들이 나인 줄 알았다.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자리에서 물러난 뒤, 처음 맞은 평일 아침은 낯설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새벽. 울리지 않는 휴대폰.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조용한 거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빠져나온 자리는 생각보다 빨리 메워졌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자리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는다.

새벽길을 혼자 걷다가 문득 양자의 세계를 떠올린 적이 있다. 하나로 정해지기 전, 여러 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 낯선 세계.

그 불확실성이 이상하게도 삶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수많은 가능성 사이를 지나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

조금 늦게 집을 나섰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 한마디를 참았다면 달라졌을 관계. 그날 다른 길을 택했다면 전혀 다른 곳에 서 있을지도 모르는 나.

삶은 그렇게 우연과 선택 사이에서 조금씩 방향을 바꾸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대부분은 스쳐 갔다. 이름조차 희미해진 얼굴도 많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야 더 선명해졌다.

그가 내게 남긴 말 하나, 내가 끝내 건네지 못한 말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람은 떠나도 흔적은 떠나지 않았다.

그 흔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직함이 사라진 뒤 가끔 묻게 된다.

나는 무엇으로 여기에 존재하는가.

아직 답은 모른다.

다만 새벽의 어두운 방에서 모니터를 켜고 오래된 기억 하나를 문장으로 옮길 때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흐릿하던 시간이 잠시 멈춘다.

사라진 얼굴에 표정이 돌아오고, 잊었다고 생각한 어느 날의 바람이 다시 분다. 그때는 몰랐던 마음도 뒤늦게 제 이름을 얻는다.

글을 쓴다고 과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떠난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후회가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흩어지던 기억을 한곳에 머물게 할 수는 있다.

한 줄의 문장이 된다.

나는 이제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의미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만난 사람과 헤어진 사람에게 모두 특별한 운명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온 삶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는 아직 내 몫이다.

그래서 새벽이면 다시 모니터 앞에 앉는다.

하루씩 사라지는 시간을 불러내어 한 줄씩 적는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문장이 남아 있는 동안, 내가 지나온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작고 분명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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