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가 막히던 날 떠올린 똥바가지, 우리가 잊은 생명의 순환

변기가 막히던 날, 똥바가지가 떠올랐다

 

변기가 막혔다.

레버를 내려도 물은 내려가지 않았다. 물은 천천히 차오르더니 변기 입구까지 닿았다. 급히 철물점에서 사 온 뚫어뻥을 변기에 밀착시키고 몇 번이고 힘껏 눌렀다.

퍽, 퍽.

손끝으로 전해지는 둔탁한 저항. 그리고 왈칵 솟구치는 더러운 물.

순간 얼굴을 돌렸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겨우 이 정도 냄새에 얼굴을 돌리는 내가 낯설었다. 나에게도 이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살아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화장실은 재래식이었다. 문을 열기도 전에 퀴퀴한 냄새가 먼저 밀려왔고, 깊은 분뇨통은 늘 검게 차 있었다. 여름이면 숨이 막혔고, 겨울에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순번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분뇨를 퍼내는 순번도 있었다.

순번이 되면 긴 나무 바가지로 분뇨를 퍼 오수통에 담았다. 둘씩 짝을 지어 긴 막대에 오수통을 걸쳐 메고 밭까지 옮겼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통 안에서는 철렁철렁 소리가 났고, 어깨는 금세 저려 왔다. 신발에 튄 오물은 씻어도 냄새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때도 냄새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구도 일을 피하지 않았다.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었고, 농사를 짓는 마을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옮긴 것은 단순한 오물이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거름이었다는 것을.

여름이 되면 그 순환은 눈앞에서 열매가 되었다.

참외와 수박의 씨앗은 사람의 몸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흙으로 돌아왔다. 소화되지 않은 씨앗은 인분 거름과 함께 밭에 뿌려졌고, 계절이 바뀌면 조용히 싹을 틔웠다. 누구도 심지 않았고, 누구도 돌보지 않았다. 흙은 사람의 흔적마저 품어 생명으로 되돌려 주었다.

그렇게 자란 참외와 수박을 우리는 ‘똥참외’, ‘똥수박’이라 불렀다.

이름은 우스웠지만 맛은 유난히 달았다. 옷자락에 몇 번 문질러 흙만 털어낸 뒤 그대로 베어 물면 달콤한 즙이 입안 가득 번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 단맛은 참외의 맛만이 아니라, 버려진 것마저 생명으로 되돌려 주는 흙의 힘이었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재래식 화장실은 사라지고 집집마다 수세식 변기가 들어섰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흔적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냄새도, 더러움도, 불편함도 눈앞에서 지워진다.

우리는 훨씬 깨끗하고 위생적인 삶을 얻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너무 깨끗해진 대신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예전에는 내가 버린 것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손으로 퍼 담고 어깨에 메고 흙으로 가져갔다. 냄새를 맡았고, 무게를 느꼈다. 사람도 자연의 순환 속에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지금은 버튼 하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내가 버린 것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무엇을 거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잊고, 잊으니 관계도 함께 끊어진다.

뚫어뻥을 다시 힘껏 눌렀다.

잠시 뒤 ‘쿠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막혀 있던 물이 한꺼번에 빨려 내려갔다.

변기에는 다시 맑은 물만 남았다.

손을 씻고 돌아서려다 한동안 변기를 바라보았다.

깨끗함은 분명 고마운 것이다. 그러나 더러움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 눈앞에서 멀어졌을 뿐이다.

문득 밭으로 오수통을 메고 가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냄새를 참으며 걷던 그 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명의 순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그날 막힌 것은 변기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기억도 함께 막혀 있었다.

뚫어뻥이 뚫어낸 것은 배수관이 아니라, 흙과 사람을 이어 주던 오래된 기억의 통로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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