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바퀴, 닳아가는 만큼 우리는 앞으로 간다

인생이라는 바퀴

 

새벽 어스름이 소래산 자락에 남아 있을 때면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을 본다.

한 발이 땅을 딛고 뒤로 밀려나면 다른 발이 앞으로 나온다. 단순한 반복이다. 그런데 그 신발 밑창을 바라보다 문득 바퀴 하나가 떠올랐다.

사람도 저마다 가슴속에 바퀴 하나를 품고 사는 것은 아닐까.

바퀴는 둥글어서 굴러간다. 그러나 둥글기만 해서는 바퀴가 되지 못한다. 한가운데 축이 있어야 한다.

테두리는 세상과 부딪힌다. 매끈한 길도 만나고 자갈밭도 지난다. 돌에 긁히고 진흙에 빠지며 조금씩 닳는다.

오래 구른 바퀴가 새것처럼 반짝인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사람도 오래 살면 닳는다.

젊어서는 닳는 것이 손해인 줄 알았다. 무언가를 잃는 것이 두려웠고, 뒤처지는 것은 더 두려웠다. 그래서 더 빨리 달렸고 더 단단히 움켜쥐었다.

세월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모서리가 닳아야 덜 부딪히는 것도 있었다. 내려놓아야 가벼워지는 것도 있었다. 사람에게 상처받으며 사람을 조금 이해했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겪으며 세상이 내 뜻대로만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바퀴의 테두리는 그렇게 닳는다.

그래도 중심의 축까지 닳아 없어져서는 안 된다.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무엇만은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지. 그것이 삶의 축일 것이다.

겉은 세월을 따라 돌더라도 중심까지 세상에 내줄 필요는 없다.

바퀴를 가만히 보면 신기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아무리 큰 바퀴라도 땅에 닿는 곳은 아주 작다.

뒤쪽은 이미 지나갔고 앞쪽은 아직 허공에 있다. 바퀴가 온몸의 무게를 싣는 곳은 지금 땅을 누르는 작은 자리뿐이다.

인생도 그렇다.

지나간 날은 다시 밟을 수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날은 미리 디딜 수 없다.

내가 밟을 수 있는 땅은 오늘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밥을 먹고, 산길을 걷고, 책상 앞에 앉아 몇 줄의 글을 쓴다.

젊은 날에는 이런 하루가 너무 평범해 보였다. 무엇인가 큰일을 해야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평범한 하루를 평범하게 살아내는 일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바퀴는 같은 원을 끝없이 반복한다. 그러나 같은 땅을 두 번 밟지는 않는다.

우리의 하루도 그렇다.

어제처럼 밥을 먹고, 어제처럼 걷고, 어제처럼 잠자리에 들지만 오늘은 어제가 아니다. 나는 하루 더 늙었고, 나무 한 잎은 더 물들었다. 누군가는 가까워졌고 누군가는 조금 멀어졌다.

반복되는 것 같아도 삶에는 같은 날이 없다.

어느새 산 위로 아침빛이 번진다.

앞서가던 사람들의 등이 나무 사이로 작아진다. 나는 잠시 멈춰 운동화 밑창을 내려다본다.

뒤축 한쪽이 유난히 닳아 있다.

예전 같으면 새 신발부터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 닳은 자리가 싫지 않다.

저만큼 걸었다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내 삶의 바퀴도 많이 닳았다. 돌부리에 긁힌 자리도 있고 깊이 패인 흔적도 있다. 돌아가고 싶은 길도 있고, 조금 천천히 지나왔으면 좋았을 길도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닳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바퀴는 없다.

나는 다시 산길을 걷는다.

한 발이 땅을 누른다. 몸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 발이 떨어지는 순간, 조금 전의 현재는 벌써 과거가 된다.

다른 발을 내민다.

새로운 땅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내가 밟아야 할 만큼만 걸으면 된다.

산길에는 발자국이 남고,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는 닳은 자리가 남는다.

어쩌면 삶은 멀리 가는 일이 아니라,

자기 바퀴로 자기 길을 끝까지 굴러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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