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빠꾸가 없어요

빗소리가 산길의 잎사귀를 흔들던 날이었다.
강화도 마니산. 해발 472.1m.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산행일지 모르지만, 환갑을 넘긴 몸에는 숫자보다 높은 산이었다.
여동생 부부와 우리 부부, 누님까지 다섯 사람이 함께 산을 올랐다. 출발할 때만 해도 바람은 시원했고 걸음에는 호기가 있었다.
중턱을 넘어서자 사정이 달라졌다.
계단은 가팔라지고 바윗길은 거칠어졌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발끝에 걸리는 돌멩이 하나도 작은 벽처럼 느껴졌다.
그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방울이었다. 곧 빗줄기가 굵어졌다. 땀과 빗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내려갈까.
뒤를 보면 내려가는 길이 있었고, 위를 보면 정상은 안개 속에 숨어 있었다.
지친 사람에게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조금 더 가까워 보인다.
그때 위쪽에서 자갈 밟는 소리가 들렸다.
안개 사이로 세 분의 어르신이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 일흔을 훌쩍 넘겨 보였다. 옷은 비에 젖었지만 걸음은 단단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어르신, 비도 오는데 어떻게 끝까지 올라가셨어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한 어르신이 젖은 옷자락을 털며 껄껄 웃었다.
“우리는 빠꾸가 없어요.”
그뿐이었다.
어르신들은 우리 곁을 지나 산 아래로 내려갔다.
우리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웃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산을 올랐다.
계단 하나.
바위 하나.
결국 참성단 근처에 닿았다.
정상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지금 희미하다. 안개가 많았고 비도 내렸다.
그런데 그날 들었던 한마디는 아직 선명하다.
“우리는 빠꾸가 없어요.”
산에서 내려온 뒤에도 그 말이 오래 따라다녔다.
이상하게도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마니산 정상보다 마흔 살 무렵의 교문이 먼저 보였다.
그 시절 나는 심한 우울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부터 힘겨웠다. 몸을 일으키고 옷을 입고 학교까지 가는 일이 매일 작은 등산이었다.
나는 교사였다.
칠판 앞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몸과 마음은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다. 방과 후 병원으로 가 링거를 맞으며 다음 날을 버틸 힘을 채우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담당 원장님이 자리를 비워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그는 내 상태를 살펴본 뒤 말했다.
“선생님, 학교를 그만두고 쉬는 게 좋겠습니다.”
솔깃했다.
그만두면 편해질 것 같았다.
아침마다 교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 칠판 앞에서 멀쩡한 사람처럼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사직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며칠 뒤 담당 원장님을 다시 만났다.
내 이야기를 들은 원장님은 단호했다.
“지금 선생님에게 학교는 단순한 직장이 아닙니다. 일상을 놓지 마세요. 학교에 가는 그 행동이 선생님을 세상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직서를 쓰지 않았다.
어느 의사의 판단이 모든 사람에게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살다 보면 그만두어야 살아나는 일도 있다. 돌아서야 하는 길도 있다.
다만 당시의 나에게는 교문을 계속 통과하는 일이 삶과 이어진 가느다란 끈이었다.
병은 금세 낫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도 힘들었다.
그래서 멀리 보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 가자.
교문까지만 가자.
그렇게 하루를 건넜다.
하루가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한 해가 되었다.
마침내 나는 32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학교를 떠났다.
돌이켜보면 내 삶을 지켜준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었다.
힘겨운 어느 아침, 교문 안으로 들여놓았던 한 발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인생에 언제나 빠꾸가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는 돌아서야 한다. 위험한 길에서는 내려와야 한다. 포기가 때로는 패배가 아니라 지혜다.
그러나 길이 틀린 것과 길이 힘든 것은 다르다.
우리는 종종 그 둘을 혼동한다.
힘들다는 이유로 틀린 길이라 생각하고, 지쳤다는 이유로 돌아서려 한다.
그러므로 인생의 갈림길에서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이 길이 정말 틀렸는가.
아니면 지금 내가 지쳤는가.
마흔의 나는 지쳐 있었다.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 걸음 더 갔다.
그 한 걸음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요즘도 비 오는 날이면 마니산의 세 어르신이 생각난다.
굽은 등을 하고 빗속을 내려오면서도 웃던 사람들.
“우리는 빠꾸가 없어요.”
그날 그분들은 산을 내려갔다.
나는 산을 올랐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지만, 어쩌면 우리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가야 할 곳을 향하여.
그분들은 오래전에 마니산을 내려갔지만,
그날 남긴 한마디는 아직도 내 안에서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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