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끝까지 닫지 않는 이유

창을 때리는 빗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폭풍우가 몰아쳐 문을 잠근 것도, 눈더미가 길을 막은 것도 아니었다.
내 방의 빗장은 안쪽에서 잠겼다.
세상은 여전히 부산했다.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졌고, 필요에 따라 안부를 물었다. 말은 넘쳤지만 오래 남는 말은 드물었다.
나는 어느 순간 그 소음에서 걸어 나왔다.
누가 밀어낸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닫힌 문을 답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게 밀폐는 자유에 가까웠다.
문을 닫으면 공기가 가라앉았다. 남의 표정을 살피지 않아도 되었고, 적당한 말을 골라내지 않아도 되었다.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아도 되었다.
그제야 내 숨소리가 들렸다.
혼자는 외로웠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느끼던 외로움보다는 견딜 만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나는 자주 섬이 되었다. 같은 식탁에 앉아 웃고 있어도 말은 마음에 닿기 전에 허공에서 흩어졌다.
어깨가 가까워진다고 마음까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관계의 계산법에도 서툴렀다.
얼마나 다가가야 하는지, 어디에서 물러나야 하는지 잘 몰랐다. 적당한 친절과 적당한 무관심 사이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예전에는 그것을 결함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성숙한 사람이라면 나는 끝내 훌륭한 어른이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문을 열어놓고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도 모르겠다.
문에는 닫는 기능도 있다.
바람을 막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다. 때로는 안에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문을 닫았다.
그런데 커튼까지 닫지는 못했다.
오후가 되면 가끔 창가로 간다. 커튼 끝을 손가락으로 조금 들어 올린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장바구니를 든 사람이 지나가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걷는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천천히 어디론가 향한다.
나는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 정도의 거리가 좋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일이 생긴다.
누군가의 글 한 줄이 닫힌 문을 넘어 들어온다. 오래전에 건네받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불쑥 생각나기도 한다. 스쳐 지나간 눈빛 하나가 며칠씩 마음에 머물기도 한다.
그럴 때면 굳게 닫았다고 생각했던 내 안에도 작은 틈 하나가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늘 가까이 붙어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로의 문을 억지로 열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빛 하나 지나갈 틈은 남겨두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한 관계도 있다.
오늘도 창밖으로 한 사람이 걸어간다.
나는 커튼을 조금 들추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는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이제 커튼을 내려도 된다.
손을 놓으려다 잠시 멈춘다.
방 안은 고요하고, 문은 여전히 잠겨 있다.
나는 커튼을 끝까지 닫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의 틈을 남겨둔다.
그 틈으로 오후의 빛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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