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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흘러가되 사라지지 않는 삶을 위하여

by 선비천사 2025. 6. 12.

 

 

나는 가끔 구름이 되고 싶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밀도의 존재로.

 

사람들은 매일 시간에 쫓기고 장소에 묶인다.
스스로 만든 틀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구름은 다르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하늘을 유영한다.

느리게 흐르되 지루하지 않고,
고요히 머무르되 존재를 숨기지 않는다.
그 유연함이 부럽다.

 

예전에 직장에서 큰 실수를 한 날,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회색빛 구름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고,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위로가 됐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내 감정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그때 처음으로
‘구름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삶의 틀을 벗어나고 싶었던
첫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구름은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모습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한다.
양 떼 같기도 하고, 산 능선 같기도 하며,
누군가의 옆모습 같기도 하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추억을 보고, 그리움을 보고,
때로는 환상을 본다.

꿈과 현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조용히 허물어뜨리는 존재.
그게 구름이다.

 

내가 구름이라면,
세상을 덮는 존재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슬픔을 가려주는,
햇살을 잠시 멈추게 하는 그런 구름.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
부드럽게 어깨 위에 얹히는 위로.

 

그것이 사랑일 수도,
회한일 수도,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일 수도 있다.

 

TV에서 아프리카 사바나를 본적이 있다.
화면에 나타난 풍경.
사자, 얼룩말, 원숭이들이 뒤엉켜 뛰논다.
그들 위로 구름이 흘렀다.

 

그곳의 구름은
숨을 쉬는 것처럼 움직였다.
뜨거운 땅 위를 지나가기만 해도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듯했다.


비가 내릴 듯한 하늘을 보면
아직도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칠 때면
이불 속에서 생각했다.

 

“구름이 나에게 화가 난 걸까?”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기억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구름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때로는 고함처럼,
때로는 속삭임처럼.

구름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
무거운 감정을 덜고 싶은 욕망.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흘러가되 흔적을 남기는 삶.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구름처럼,
흐르되 사라지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외친다.

 

“동자승아, 천수경을 외우도록 하여라.”

 

구름이 그러하듯,
너도 무겁지 않게,
그러나 가볍지 않게 이 세상을 건너가거라.

 

형체는 없되, 마음이 있고.
거짓이 있되, 자비가 있는 존재로 살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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