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애를 도서관에서 처음 봤다.
교복 셔츠 단추 하나는 풀려 있었고, 손엔 항상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모범생 같지도, 게으른 학생 같지도 않았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신경 쓰였다.
하루는 우연히 그 화면을 보게 됐다.
“이 문제, 전에도 틀렸어요. 이번에는 이해되셨나요?”
음성은 없고, 글씨만 툭툭 튀어나왔다.
그 애는 고개만 끄덕이며 펜을 들었다.
그 장면은,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옆에 앉아 문제를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AI야.”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 애가 웃으며 말했다.
“요즘은 과외도 AI가 해줘. 선생님보다 나한텐 이게 더 잘 맞아.”
솔직히 말해 처음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기계가 사람을 가르친다니, 그런 말이 어딨어?
하지만 며칠 동안 그 애를 지켜본 후, 내 생각은 바뀌었다.
그 애는 늘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집중력으로 공부했고, 지치거나 조급해 보이지 않았다.
누구에게 보이려는 태도도 없었고, 누가 시키는 듯한 억지도 없었다.
“지겹지 않아?”
물어봤더니 그 애는 태블릿을 슬쩍 내게 건넸다.
화면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틀려도 혼나지 않고, 몇 번을 물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아요.”
그 한 문장이 마음에 박혔다.
나 역시 과외를 받으며 눈치를 본 적이 많았다.
답을 틀리고 말이 막히면, 숨소리 하나에도 위축됐던 기억.
사람이 무서워서 배우는 게 싫어졌던 순간들.
“그래도 진짜 선생님이 없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내 질문에 그 애는 태블릿을 내려놓고 말했다.
“맞아. 위로는, 아직 AI가 못 해주거든.”
생각해보면, 그 말이 정답이다.
AI는 문제를 풀어줄 수 있지만, 망친 시험지 위에 올려줄 따뜻한 캔커피는 못 건넨다.
긴장한 손을 잡아주거나, 고개를 들어주게 만드는 한마디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요즘 나도 AI 과외를 써본다.
밤 11시에 물어도 대답해주고, 같은 질문을 세 번 해도 짜증내지 않는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설명해드릴게요.”
조금 딱딱한 말투지만,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그 애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예전보다 말이 많아졌고, 웃는 일도 많아졌다.
이젠 내가 먼저 인사한다.
“AI랑 공부 어때?”
그러면 그 애는 웃으며 말한다.
“좋아. 근데… 아직은 사람이 더 좋아.”
아마 앞으로 과외는 더 달라질 거다.
교실도, 선생님도, 방식도.
하지만 배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기다려주고, 함께 걷는 그 마음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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