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우체국 앞을 지나가다
한참을 멈춰 섰다.
유리창 너머, 봉투를 고르는 사람들.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이는 손끝.
나는 오래전 한 장의 손편지를 떠올렸다.
도착하지 않은, 그러나 내 마음에 오래 남은.
인생이 한 장의 편지라면,
그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글의 끝맺음, 즉 결과일까.
아니면, 꾹꾹 눌러쓴 그 과정일까.
나는 두 사람을 안다.
A는 조용히 자신의 일터를 지키는 사람이다.
하루의 시작을 문 여는 손끝으로 열고,
유리창을 닦으며 하루를 반짝이게 만든다.
말은 정직하고, 행동은 반듯하다.
하지만 그는 눈에 띄지 않는다.
매출도 없다.
그의 시간은 언제나 ‘과정’ 속에 머문다.
B는 다르다.
불쑥 나타나고, 말은 빠르다.
화려한 언변과 적당한 과장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그는 결과를 만든다.
눈에 보이는 수치, 박수, 인정을 거머쥔다.
사람들은 말한다.
“성과가 말해준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다.
그 성과가, 그 사람의 전부일까?
학교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고개를 숙인 채 하루를 견디는 아이가 있다.
문제 하나를 붙잡고 몇 시간을 버틴다.
끝내 풀지 못해도,
그 집중의 골은 누구보다 깊다.
그 아이의 노력이 성적으로 보상되지 않는 순간,
나는 마음이 흐려진다.
다른 한 아이는 가벼운 농담처럼 문제를 풀어낸다.
“찍었는데 맞았어요.”
웃으며 말하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를 생각한다.
운이든 재능이든,
우리는 그것을 결과로 평가한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삶은 찍어서 맞히는 시험이 아니라고.
정답을 몰라도 끝까지 풀어보려는 태도,
그 과정 속에 사람의 무게가 담긴다고.
우리는 편지를 쓸 때,
마지막 문장만을 기억하지 않는다.
수신인을 떠올리며 고른 종이,
삐뚤어진 글씨를 지우고 다시 쓴 문장,
조심스레 붙인 우표와 보내는 손의 떨림.
그 모든 것이 편지다.
결과는 도착일 뿐,
편지는 그보다 앞서 시작된다.
삶도 그렇다.
어떤 이의 성실함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처럼,
지금은 눈에 띄지 않지만
언젠가는 마음 깊은 곳에 닿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런 편지를 기다린다.
시간이 좀 걸려도,
그 과정이 아름다운,
그런 사람이 되어 도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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