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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불타는 산, 돌아오는 연어, 그리고 옐로스톤에서 배운 것

by 선비천사 2025. 8. 9.

 

 

자연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감탄과 경외를 섞어 말한다.
하지만 미국의 국립공원들은 그 감탄의 스케일을 가늠하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은 나에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자연 철학’을 가르쳐준 교실이었다.
1872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을 얻은 그곳은, 지금까지도 세계인의 버킷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명소다.


🚗 이틀을 달려 도착한 대자연

여정은 캘리포니아 북쪽 끝에서 시작됐다.
여동생이 사는 도시에서 차를 몰고 출발했을 때만 해도, ‘이틀이나 달려야 한다’는 말이 그저 비유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미국의 지도를 펼쳐보면, 도시와 도시 사이의 간격이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속도로의 양쪽으로 펼쳐진 풍경은 시간과 계절을 한꺼번에 건너뛰는 듯했다.
어느 구간은 붉은 사막이, 어느 구간은 울창한 침엽수림이, 또 어느 구간은 설산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대륙을 달린다’는 표현이 비로소 실감 났다.
점심과 저녁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밤에는 모텔에서 하루를 묵은 뒤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틀째 오후, 드디어 몬태나와 와이오밍의 경계에 다다랐다.
푸른 하늘 아래 ‘Yellowstone’이라고 새겨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을 때, 피곤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 땅이 끓는 곳

옐로스톤의 첫인상은 ‘거대한 숨구멍’이었다.
대지 곳곳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김이 흘러나오는 틈새 사이로 물방울이 튀었다.
그 온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안내문에 따르면 90도 이상의 온천수도 있다니, 조금만 방심해도 화상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뜨거움 속에서 놀라운 색채가 피어난다.
미네랄과 미생물의 영향으로 온천수는 에메랄드, 청록, 황금빛, 심지어 붉은색까지 띠었다.
가장 유명한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간헐천 앞에 섰을 때, 사람들은 마치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처럼 둘러앉아 있었다.
“이제 곧 터질 거야.”
누군가의 말이 끝나자마자, 깊은 지하에서 끓어오르는 물줄기가 하늘을 향해 솟았다.
쏟아져 나온 수증기가 햇빛에 부딪히며 무지개빛으로 반짝였다.
이 순간, 나는 ‘지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 야생의 주인들

옐로스톤에서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다.
이곳의 진짜 주인은 야생 동물들이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곰이 풀밭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차들이 멈춰 서서 구경하자 곰은 슬쩍 우리 쪽을 힐끗 보고, 다시 식사에 몰두한다.
들소(bison)는 더 대범하다. 도로 한가운데로 걸어 나와 모든 차량을 세워버린다.
운전석에서 그 거대한 몸집과 눈빛을 마주하면, 알 수 없는 압도감이 느껴진다.
엘크는 높은 뿔을 달고 숲속을 천천히 걸으며 바람을 가른다.
이곳의 규칙은 간단하다. 동물에게 다가가지 말고, 그들의 길을 방해하지 말 것.
그저 그들의 삶을 ‘조용히 지켜보는 손님’으로 머무르는 것이다.


🔥 불을 끄지 않는 나라

미국 국립공원 정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자연 발화된 불은 끄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1988년, 옐로스톤 전체 면적의 36%가 불에 탔을 때조차, 정부는 개입하지 않았다.
나무가 늙고 병충해에 시달리면, 결국 불이 그들을 태워 새로운 생명의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해 불은 몇 달 동안 꺼지지 않았다.
다만 불이 인근 마을로 번질 위험이 생기자 그제야 소방대가 투입됐지만, 대규모 불길 앞에서 사람의 힘은 한없이 작았다.
결국 그 불은 10월, 첫눈이 내리면서야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나는 여행 중 숲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본 적이 있다.
한국 같았으면 긴급 경보가 울리고 소방차가 달려왔을 텐데, 이곳 사람들은 담담하게 말했다.
“자연이 알아서 할 거야.”
그 한마디에 담긴 태도는, 나의 상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 연어의 귀향

옐로스톤에서 배운 자연의 순환 이야기는, 워싱턴주와 알래스카에서 다시 이어진다.
이곳은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 ‘귀향’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개체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댐이었다.
3m 이상 뛰어오르지 못하는 연어는 댐 앞에서 발이 묶이고, 겨우 열린 수문 앞에서는 물개와 바다사자가 기다린다.
연어는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알을 낳은 뒤, 숨을 거둔다.
죽음을 향한 헤엄. 그 본능은 너무나 처절하지만, 그 끝에는 생명의 시작이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은 언젠가 병이 된다. 순리를 따라야만 삶이 완성된다.”


🌄 거대한 공원의 법칙

미국 국립공원의 또 다른 특징은 그 크기다.
옐로스톤은 서울의 15배, 그랜드캐니언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만큼 길다.
공원 전체를 보려면 며칠을 차로 달려야 한다.
게다가 놀이기구나 곤돌라 같은 인공 구조물은 거의 없다.
경관을 쉽게 볼 수 있는 편의 시설보다, 자연 그대로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더 멋진 경치를 보기 위해선 직접 걸어가야 한다.
편안함을 포기해야만, 그 대가로 더 깊은 감동을 얻는 셈이다.


✨ 내가 배운 것

옐로스톤에서의 며칠은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
그곳에서 나는 ‘자연 보호’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철학임을 보았다.
불타는 숲, 도로 위의 들소, 숨 쉬는 땅, 되돌아오는 연어…
모든 것이 순리에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리를 지키기 위해 인간이 물러서는 모습이, 무엇보다 인상 깊었다.

 

 

*관련글 보기

(그랜드 캐니언 여행)  https://sunbicheonsa.tistory.com/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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