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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세상을 정화하는 건 쓰레기통이다”

by 선비천사 2025. 8. 4.

 

 

집 구석, 언제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던 쓰레기통이 있었다.
뚜껑은 닫혀 있었지만,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두 알고 있었다.

 

먹다 남은 과일 껍질, 젖은 티슈, 찢어진 메모지.
말하자면, 남들이 원치 않는 것들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어릴 땐 그 통이 무서웠다.
냄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왠지, 나의 어설픈 흔적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쓸모없다고 판단한 것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매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통은 늘 가득 찼고, 또 비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말했다.
“쟤는 그냥 쓰레기통이야.”

 

가볍게 던진 한마디였다.
다들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쓰레기통이라… 그 말엔 무언가 묘한 이중성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쓰레기통은 세상을 정화시키는 존재다.
우리가 버린 감정, 말, 상처, 실수, 후회—
그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냄새조차 스스로 품는다.
욕을 먹어도, 냄새를 풍겨도, 자리를 지킨다.

 

반면 사람은 어떨까.
입으로는 좋은 말을 하면서도,
마음 깊숙이 누군가를 찌를 준비를 한다.

 

누군가가 실수하면 조용히 정화해주기보다,
목소리로 되받아친다.

 

말은 침묵보다 가볍고, 때로는 무기보다 날카롭다.

 

한 번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넌 왜 항상 받아주기만 해? 바보 아니야?”

 

그때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누군가의 말과 감정을 조용히 정화해주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이란 걸.

 

나는 가끔 오래된 쓰레기통 앞에서 멈춘다.
때때로 그 위엔 누군가가 놓고 간 종이컵,
아니면 바람에 날린 꽃잎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그건 마치, 말없이 세상을 정화한 이에게 보내는 작은 감사처럼 느껴진다.

 

쓰레기통에게 말한다.
“너처럼 살 수 있다면,
세상이 덜 지저분해질지도 몰라.”

 

그 말은 들리지 않겠지만,
어쩐지 통이 가볍게 웃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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