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웃고 있었다.
어릴 적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였다.
운동회 때 넘어져서,
흙 묻은 무릎을 감싸고 흐느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내가 손수건을 내밀었던 기억도 함께.
그랬던 애가,
이젠 TV 속에서 반듯한 넥타이를 매고,
사람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
대기업에서 젊은 나이에 본부장이 됐다며
뉴스 자막 아래로 스펙이 줄줄이 흘렀다.
화면 속 그는 참 반듯하고, 당당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화면을 끄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쉬었다.
그 애가 웃는다고,
나는 왜 조용히 식었을까.
싫은 것도 아니고, 미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슴 안쪽이 묘하게 서늘했다.
시기심.
그 감정의 이름을 꺼내는 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시기심은 꼭
누군가를 끌어내리려는 마음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이는,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가늠하려는 눈금처럼
조용히 작동한다.
남이 앞서가면
나는 어느새 속도를 재고, 방향을 살핀다.
그리고 그 감정은,
축하의 말 뒤에
천천히 따라온다.
그 애만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가
직장도 가정도 잡았다고 했을 때,
매달 글을 올리던 후배가
드디어 신인상을 탔다고 알렸을 때,
나는 웃었다.
진심으로 축하했다.
하지만 그 진심 속엔,
나 자신에 대한 조용한 질문이
늘 같이 있었다.
나는 왜 그만큼 가지 못했을까.
나는 왜 아직도 제자리 같을까.
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날 때면,
방 안은 조용하지만
마음은 웅성거렸다.
축하를 전하면서도
나는 내 속도를 의심하고,
내 자리를 가늠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감정이 꼭 부끄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시기심은 어쩌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비춰주는 작은 거울일지도 모른다.
그 애가 웃는 모습을 보며
내가 느꼈던 쓸쓸함은,
나도 그런 자리에 서보고 싶다는
소망의 다른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기로 했다.
시기심이 올라올 때면
한 걸음 멈춰
내 안을 들여다본다.
“나는 무엇이 부러웠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닿고 싶은 걸까?”
그 질문이
다시 나를 걷게 만든다.
누군가의 웃음에 멈추지 않고,
내 꿈에 다시 다가가게 한다.
사촌이 땅을 샀다고 배가 아픈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건 내가
그 땅 어딘가에
나도 나만의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마음의 신호니까.
다만 이제는,
배가 아플 때마다
나는 이렇게 묻는다.
“나는 어디에 뿌리내리고 싶은가?”
그리고 조용히,
내 마음속에도 작은 씨앗 하나를 심는다.
비록 지금은 땅이 없어도
내 마음속 밭은
충분히 넓고 비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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