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 땅을 밟던 그날,
공항 입국 심사대 앞에서 나는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낯선 공기, 낯선 언어, 낯선 시선.
그 긴 줄 끝에서 마주한 심사관은 건장한 흑인 남성이었다.
문신이 어깨를 덮고 있었고, 눈빛은 매서웠다.
영어는 짧고, 심장은 빨랐다.
‘혹시 무슨 오해라도 받으면 어쩌지’
불안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런데, 그가 입을 열었다.
“여행 오셨어요? 몇 일 계세요?”
또렷한 한국어.
순간, 공항의 소음이 사라지고
그 한 문장만이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네... 네!” 하고 겨우 대답했다.
그는 말했다.
“서울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었어요.
떡볶이 진짜 좋아해요. 근데 매워요. 진짜.”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의 말투에는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라,
문화를 품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엄지를 치켜든 그의 손짓과 함께
나는 무사히 입국 심사를 통과했다.
그것은 단순한 입국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받은 따뜻한 환대였다.
며칠 뒤,
그랜드캐니언 절벽 앞에서 사진을 찍던 중이었다.
건너편을 걷던 백인이
우리를 힐끗 보더니 외쳤다.
“김치!”
누군가는 장난으로 들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낯설지 않은 축복처럼 들렸다.
한국의 ‘향’이
더 이상 놀림이 아닌,
‘존중’으로 바뀌고 있었다.
호텔 근처 슈퍼마켓엔
냉동 김밥과 'KIMCHI'라고 적힌 병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BTS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오징어게임” 인형 소리를 따라 했다.
문화는 조용히, 그러나 깊게
일상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예전엔 도시락 뚜껑을 열 때
김치 냄새가 퍼질까 봐 눈치를 봤다.
그때의 나는 김치를 부끄러워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이름 하나에
세상에서 환대를 받고 있다.
세상은 바뀌었고,
나도 바뀌었다.
그 밤,
숙소에서 컵라면에
반 병 남은 김치를 꺼내 먹었다.
익숙한 맛이었다.
그런데 낯선 땅에서 마주한 그 익숙함은
눈물이 날 만큼 깊었다.
한입 베어물 때마다
수천 킬로미터 너머에서 시작된
나의 뿌리가 나를 토닥이는 듯했다.
이제는 세계 어디서든 말할 수 있다.
나는 김치를 먹고 자란 사람이다.
그 향과 맛을
삶처럼 안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나는 이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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