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골의 새벽은 유난히 조용하다.
마당가 감나무엔 까치밥 몇 알이 매달려 있고,
굽이진 산등성이엔 눈이 포근한 목도리처럼 둘러앉아 있다.
정월 초하루 아침.
그 고요를 깨운 건 한 줄기 외침이었다.
“자— 튀기오!”
아이들은 문소리보다 먼저 반응했다.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마당으로 내달렸다.
어김없이 뻥튀기 아저씨가 오신 것이다.
자전거 뒤에 기계를 싣고,
읍내에서부터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그는
마치 한 해를 열어주는 전령 같았다.
군용 점퍼, 귀마개 달린 털모자, 낡은 고무장갑.
투박한 그 복장이
아이들 눈엔 ‘진짜 사람이 왔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아저씨는 마을 어귀 돌담 옆,
양지바른 자리 한켠에 기계를 세운다.
마을 어른들이 하나둘 자루를 들고 모여든다.
강냉이, 찹쌀, 보리…
단순한 곡식이 아닌,
겨울을 버틸 바삭한 위로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자루를 질질 끌고 따라온다.
놀이터 대신 오늘은 줄을 선다.
그 속엔 튀밥보다 더 큰 기대가 들어 있었다.
기계가 윙—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마치 종교 의식을 하듯 조용해진다.
그 침묵을 다시 깨우는 건
아저씨의 익숙한 외침이다.
“자— 튀깁니다!”
‘뻥!’
하늘이 작게 흔들리는 소리.
하얀 김과 함께
고소한 향이 퍼진다.
아이들은 본능처럼 앞으로 몰려든다.
김 나는 튀밥을 손에 받아
뜨거운 채 입에 넣는다.
바삭하고 달큰한 그 맛.
어떤 설명도 필요 없다.
그건 그저 ‘기억이 되는 맛’이다.
아이들은 그날만큼은 진지하다.
차례를 지키고,
아저씨의 손짓을 따라 하기도 한다.
“나도 크면 저거 돌려볼래.”
어떤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진심처럼 눈을 반짝인다.
뻥튀기 하나에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어른들은 다시 아이가 된다.
아저씨는 잠깐 기계를 멈추고
산 너머를 바라보며 말한다.
“저 숲에 노루랑 꿩이 많대요.
놀라지 말라고 내가 먼저 소리 질렀지.”
그 말에 어른들은 웃고,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튀긴 건 곡식만이 아니었다.
긴장, 침묵, 거리감…
온 마을의 마음까지 뻥— 하고 튀겨냈다.
그날 저녁.
집집마다 벽장엔 튀밥이 가득 찼고,
방 안엔 웃음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튀밥은 고소했지만,
더 고소한 건
함께 모여 그것을 기다리던 마음들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외침을 듣지 못한다.
뻥튀기 소리 대신 스마트폰 알림음이,
기다림 대신 즉석 간식이 일상을 채운다.
따뜻한 냄새 대신
차가운 화면이 삶의 온도를 대신하는 시대.
그래서일까.
나는 종종 그 외침이 그리워진다.
누군가를 위해 먼저 소리치고,
기다리며 함께 웃던 시간.
“자— 튀기오!”
그건 단지 뻥튀기를 알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정겨운 신호였다.
그 시절엔 겨울도, 마음도
그렇게 따뜻하게 튀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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