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의 들판을 지나면,
바람이 낮게 눕는 언덕 위에 고인돌이 있다.
그 돌은 수천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시간도, 전쟁도, 계절도 다 지나갔지만
돌은 남았다.
나는 지금, 그 돌 옆에 서 있다.
제자들과 함께.
아이들과 함께 강화 고인돌 유적지를 찾은 날,
봄기운이 살짝 번진 하늘 아래
들꽃이 수줍게 피어 있었다.
역사 수업의 연장선이라며
짧은 견학으로 계획된 일정이었지만,
나는 이 시간을 조금은 다르게 느끼고 싶었다.
단순한 유적 답사를 넘어,
이 돌 앞에서 우리가 함께
멈춰 설 수 있기를 바랐다.
“선생님, 이게 진짜 무덤이에요?”
한 아이가 물었다.
“그래. 아주, 아주 오래전 사람의 무덤이야.”
“그럼 무섭지 않아요?”
나는 대답 대신,
아이와 함께 돌 앞에 잠시 앉았다.
눈을 감으면,
돌 아래로 시간이 스며든다.
땀 흘리며 돌을 나르던 사람들의 손,
풀꽃을 꺾어 무덤 위에 올리던 누이의 마음,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이의 눈빛.
그 모든 것이 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듯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하늘과 땅, 생과 죽음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무게가 고인돌이 되었고,
그 기억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나는 선생이다.
매일같이 교실에서 아이들과 씨름한다.
수업 준비, 생활 지도, 상담과 평가.
가끔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삐 달리는 건지 문득 헷갈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떠들고, 지각하고,
휴대폰을 숨길 때면,
내 목소리도 함께 거칠어진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모르는 사이,
나도 그들을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이곳, 고인돌 옆에 서면
그런 마음이 선명해진다.
사람은 모두 시간 속에
잠깐 머무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그 잠깐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일,
함께 느끼게 해주는 일이
바로 ‘교육’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한 아이가 풀을 뜯어
돌 위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는 그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작은 손끝에서,
잊히지 않을 존중이 피어나고 있었다.
도시는 늘 속도를 요구한다.
효율, 성과, 결과.
높아지는 건물과 바빠지는 시계 속에서
사람들의 말은 짧아지고,
눈빛은 멀어진다.
고인돌은 그와 반대편에 서 있다.
말을 하지 않지만 깊이 말하고,
움직이지 않지만 오래 기억하게 한다.
아이들이 조금 멀리서
장난을 치며 뛰어다녔다.
나는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
그 웃음도 이 땅의 일부이고,
그들도 언젠가는
자신만의 고인돌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그들의 기억 속에 ‘따뜻한 시간’으로 남는다면,
나는 오늘 이 들판에서
교사로서의 할 일을 다한 셈이다.
사람은 사라지지만,
마음은 남는다.
언젠가 그들이
누군가를 가르치게 될 날이 온다면,
그 시작이 이 고요한 돌 옆에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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