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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콩란을 보며 아이를 기억한다: 짧았던 담임의 기록”

by 선비천사 2025. 7. 9.

    – 작년, 한 아이와 나눈 작은 교감

 

창가 옆에 작은 화분이 있다.
초록빛 구슬들이 주렁주렁 달려,
아슬아슬하게 아래로 늘어진다.
햇살을 받을 때면 유리알처럼 반짝인다.
그 곁을 지날 때마다,
나는 문득 한 아이가 떠오른다.

 

나는 2년 전 명예퇴직을 했다.
교직에서 30년 가까이 아이들과 지내왔고,
이제는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봄,
중학교에서 1학년 담임 자리가
한 달간 비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 번 더 교실에 서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기간제 교사로 나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만 근무하던 나에게
중학교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아이들은 수시로 달려와
“누가 이랬어요, 저랬어요!”
서로를 고자질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감정의 조율자이자 중재자가 되어야 했다.

 

학부모들의 전화도 하루에 몇 번씩 걸려왔다.
그때야 알았다.
초등과 중학교 교사들은
아이들의 마음 한복판에서
늘 바쁘게 숨 쉬고 있다는 걸.

 

그 반에는 T군이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고개를 젓던 아이.
사소한 일에도 욱했고,
분노가 차오르면
서슴없이 교문 밖으로 뛰쳐나가곤 했다.

 

소풍으로 서울랜드를 간 날이 생각난다.
햇살 좋은 봄날,
아이들은 놀이기구보다 더 들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T군이 사라졌다.

 

“집에 간대요!”
아이들 말에 나는 그대로 달려나갔다.

 

멀리 달아나던 뒷모습을 쫓아
겨우 붙잡고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아이를 늘 곁에 두었다.

 

함께 지내며 알게 됐다.
T군은 의외로 조용했고,
때때로 엉뚱한 농담으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를 “문제아”라 불렀지만,
나는 느꼈다.
그 아이의 말투와 행동 뒤엔
지독한 외로움이 숨어 있다는 걸.

 

어느 날, 어머니와 통화하게 되었다.
지친 목소리로,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울증 치료받다 말았어요.
요즘은…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해요.”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문장 하나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담겨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결심했다.
그 아이만은, 절대로 혼자 두지 않겠다고.

 

며칠 뒤, 직업 체험학습이 있었다.
T군과 나는 나란히 앉아
식물 부스를 체험했다.
작고 초록빛 줄기가 길게 늘어진 화분.
우린 그날,
같은 종류의 화분 하나씩을 받아
각자의 집으로 가져갔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T군의 화분이 잘 자라기를.
그 아이의 마음도 함께 자라기를.

 

며칠 뒤, T군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우리 화분… 많이 컸어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속엔 따뜻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는 교실을 떠났다.
그리고 한 달 후,
그 학교에 일주일간 강사로 다시 가게 되었을 때
T군은 보이지 않았다.

 

“전학 갔어요.
많이 섭섭하시겠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의 조용했던 웃음이
문득 그리워졌다.

 

지금도 내 거실 한편에는
그날 내가 들고 온 화분이 자라고 있다.

 

초록 구슬들이 천천히 늘어지고,
햇살을 머금은 채 조용히 흔들린다.

 

물을 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T군의 화분은, 지금도 잘 자라고 있을까.
혹시 그 아이의 마음도
이 구슬들처럼 천천히 이어지고 있을까.

 

나는 믿는다.
누군가의 손길을 받은 생명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내가 이 식물을 가꾸듯,
어딘가에 있는 그 아이도
자신만의 속도로
잘 자라고 있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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