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떠나보낸 지 반년쯤 됐을 무렵이었다.
허전한 집안 분위기를 못 견딘 건 나보다 아이들이 먼저였다.
“아빠,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안 돼요?”
처음엔 무심히 넘겼지만, 아이들이 몇 번이고 조르던 어느 날, 마침내 나는 마음을 열었다.
강원도.
아이들 친구 집에서 태어난 강아지를 보러 함께 내려갔다.
작은 몸에 까만 눈망울을 가진 녀석이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가만히 내 손 냄새를 맡고는, 발 앞에 앉아 올려다보던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을 끌었다.
이름을 '여월이'라고 지었다.
엄마를 잃은 아이들과 아빠, 그리고 새 식구.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다시 조금씩 완성되어 갔다.
여월이는 참 착하다.
8년 동안 말썽 한번 부린 적이 없다.
자기 장난감 외에는 건들지 않고, 휴지통에 고기 냄새가 풍겨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마치 스스로 규칙을 정한 듯하다.
난 그 모습이 묘하게 든든해서,
‘경비병’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말없이, 그러나 분명히 집을 지키는 녀석.
놀라운 건, 똑똑하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장난감 가져와!” 하면 꼭 찾아온다.
내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현관 앞에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
시계도 없는데, 어떻게 아는 걸까. 참 신기한 일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산책이 시작된다.
거의 매일같이 50분 정도 빠르게 걷는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여월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배변 봉투 챙기는 소리만 들려도 벌써 현관 앞에 나가 서 있다.
나는 그 아이를 위해 걷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그 시간이 내게도 필요해졌다.
하루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듯한 그 조용한 50분.
말은 없지만, 꼬리의 리듬, 보폭의 속도에서 감정이 느껴진다.
잊지 못할 하루가 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그날도 여월이는 고집을 부렸고, 결국 비를 맞으며 밖에 나갔다.
우산이 뒤집히고, 나는 물웅덩이에 넘어졌고, 여월이는 달려와 내 얼굴을 핥았다.
그 순간, 울음과 웃음이 동시에 터졌다.
정말로, 나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다.
여월이는 다른 개만 보면 짖는다.
낯을 가리는 건지, 경계심이 센 건지—내가 좀 그런 편이니,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이젠 털빛도 조금 바랬고, 눈도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보폭은 여전히 나와 딱 맞는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개와 사람은 말이 안 통해서 아쉽다”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젓는다.
말보다 더 깊은 교감은
이렇게 함께 걸어온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가끔 문득 묻는다.
“여월아, 넌 왜 그날 그렇게 조용히 날 바라봤을까?”
그러면 여월이는 묻지 않아도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걷기로 정해졌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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