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강남대로.
앞차와의 간격은 고작 5cm.
뒤차의 헤드라이트는 내 등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밀어붙인다.
나는 운전대를 꼭 쥐고 있다.
땀이 나는 건 에어컨 때문이 아니라
긴장 때문이다.
그날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이 운전대를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상상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상암동엔 자율주행 셔틀이 다니고,
세종시엔 운전석 없는 차량이 달린다.
현대차, 기아, 테슬라...
자율주행 기능은 이미 일상이다.
자율주행엔 ‘레벨’이 있다.
레벨 2는 운전 보조,
레벨 3은 조건부 자율주행.
차가 스스로 달리고, 운전자는 준비만 하면 된다.
레벨 4는 운전자의 개입 없이
거의 모든 상황에서 차가 스스로 운전한다.
운전대 없는 차도 곧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진짜로
‘운전하지 않는 자동차’를 보게 된다.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피한 뒤
운전대를 바라보며 깊은 숨을 쉬었다.
그때부터 운전은 ‘편리함’이 아니라
‘책임’이 되었다.
지금 자율주행 기술은
그 책임을 조금씩 나눠주고 있다.
그리고 변화는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도 찾아온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에겐
자율주행 셔틀이 믿을 수 있는
미래의 안전벨트가 될 수 있다.
무릎이 불편한 노인에게
자율주행차는 이동의 자유다.
택배 기사에게는
12시간 내달리던 시간을
기계가 나눠줄 수 있다.
나는 아직도 출근길에
운전대를 직접 잡는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손을 놓고 있다.
차가 스스로 도로를 읽고,
거리와 속도를 조절하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그 순간,
‘운전’은 기술의 몫이 된다.
무엇보다 기쁜 건
시간이 다시 내 것이 된다는 사실.
운전 대신 나는 차 안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생각을 쌓는다.
운전이 아닌,
휴식과 사색의 공간이 된 자동차.
그것이 자율주행의 진짜 선물이다.
물론 그림자도 있다.
보행자를 인식하지 못한 자율차의 사고,
차량 해킹의 가능성.
기술은 연결되기에 강하지만,
열려 있기에 위험하다.
운전자가 없다는 건,
책임이 흐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걱정은 또 있다.
도로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택시기사, 버스 운전사, 배달 노동자.
기술은 누군가의 자리를
조용히 대체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새로운 자리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자율주행을 믿는다.
기술이 사람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더 사람답게 살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운전대를 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아침.
유리에 비친 하늘 위로
자율 비행체가 지나간다.
나는 자율주행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장을 넘긴다.
조금 전까진 핸들을 움켜쥐던 손이,
지금은 문장을 넘긴다.
나는 기다려왔다.
더 이상 인생을 조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그리고 백미러를 바라본다.
“이제, 뒤를 볼 필요 없는 길도 생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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