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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아버지는 왜 새벽마다 검은 옷을 입고 뛰었을까?

by 선비천사 2025. 4. 15.

 

 

 

 

그날은 유난히 바쁜 아침이었다.

회사의 급한 호출에 잠도 덜 깬 채 운전대를 잡았다.
새벽 공기는 차갑고 안개는 짙었다.
강변 도로를 따라 차를 달리던 중,
어디선가 사람 하나가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였다.
그를 늦게 발견한 나는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고, 심장은 순간적으로 멈췄다.
놀람과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누가 새벽 도로 한복판을 저렇게 위험하게 뛰는 거야?’

창문을 내리고 한마디 하려다 말았다.
낯익은 얼굴.
자주 보던 이웃이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나를 보더니 머쓱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도 그 장면을 설명해줄 수 없었고,
어떤 감정도 그를 향한 의문을 뚫고 나가지 못했다.

 

며칠 뒤, 그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아들은 간경화로 긴 시간 병상에 누워 있었고,
간 이식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상태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간을 아들에게 주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몸엔 지방간이 심하게 끼어 있었다고 했다.
간이식을 위해서는 건강한 간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에
그는 매일 새벽, 출근 전에 뛰기 시작한 것이다.
몸속 지방을 빼내기 위해, 간을 맑게 비우기 위해,

 

아버지는 누구보다 먼저 새벽을 깨우고,
사람들이 아직 눈을 뜨기도 전
검은 옷을 입고 도로 위를 달린다.

누구도 보지 않는 새벽,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시간,
그 길 위엔 땀이 흐르고,
그 땀 속엔 한 아버지의 무언의 사랑이 흘러내린다.

그는 뛰고 또 뛴다.
심장은 빨라지고, 숨은 거칠어지지만
그 걸음 하나하나에 담긴 사랑은 단단하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그날 내가 보았던 검은 옷의 사내는,
단지 땀을 흘리는 누군가가 아니었다.
그는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고 있었고,
사랑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세상엔 말보다 깊은 사랑이 있다.
그건, 새벽을 뛰는 아버지의 등 뒤에 숨어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 사랑은 결코 작지 않다.

 

나는 그날 이후로
새벽길을 걷는 모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기로 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지금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달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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