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늘 말석이 편했을까|낮은 곳에서 발견한 자유와 평온의 삶

낮은 곳이 가장 넓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늘 어딘가 어색했다. 그 문장에는 정점을 밟아본 사람만이 아는 체온이 스며 있다. 가장 밝은 조명 아래 서 본 자의 여유와, 추락의 냄새를 우아하게 감추려는 쓸쓸한 허세가 동시에 묻어난다. 그러나 나는 평생 그 세계와 무관하게 살아왔다. 애초에 박수의 중심에 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언제나 가장자리였다. 잔칫집에서도 나는 상석보다 문간이 편했다. 사람들 웃음소리가 부딪히는 중심부보다는 신발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진 문지방 근처에 슬그머니 걸터앉아 있곤 했다. 그 자리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굳이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며 웃지 않아도 되었고, 흥이 깨질 즈음이면 조용히 신발을 신고 빠져나올 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일종의 회피였다. 나는 늘 중심이 두려웠다. 주목받는 자리에는 반드시 책임과 경쟁이 따라붙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젊은 시절을 불꽃처럼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청춘은 뜨겁게 타오르기보다 오래 식지 않는 미지근한 숭늉에 가까웠다. 특별한 향도 없고, 혀끝을 놀라게 할 자극도 없지만 목을 넘길 때 거부감 없는 온도. 나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사회교사로 지낸 삼십여 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단에 서면 아이들은 나를 바라보았지만, 내 마음은 늘 칠판 귀퉁이에 흩날리는 분필 가루처럼 어딘가 떠다니고 있었다. 동료들은 승진을 준비했고, 인맥을 만들었고, 조직 안에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기 위해 분주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리만치 그런 일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면 학교 뒤편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운동장 먼지를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이들 함성이 바람에 실려오고, 햇빛 아래 떠다니는 먼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걸로 하루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두고 욕심 없는 사람이라 말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초연함이 아니라 두려움에 가까웠다. 나는 실패보다도 경쟁 자체에 지쳐 있었는지 모른다. 높이 올라갈수록 사람은 점점 더 날카로워진다. 표정은 굳고, 마음은 메말라간다. 나는 그 싸움 속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한 걸음 물러난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남는 법을 택했다.

그 덕분인지 내 삶에는 극적인 추락도 없었다. 정점에 오른 적이 없으니 내려올 이유도 없었다. 욕망을 크게 드러낸 적이 없으니 상처 입을 일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상한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남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단 한 번이라도 뜨겁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그 질문은 오래된 누룽지처럼 마음 밑바닥에 눌어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을 걸고 사랑해본 적도, 모든 것을 잃을 만큼 욕망해본 적도 없었던 삶. 안전하고 조용했지만 어쩌면 너무 미온적이었던 생. 밤이 깊어질수록 그런 생각은 희미한 서글픔이 되어 가슴 한쪽을 눌렀다.

요즘 나는 자주 소래산을 걷는다. 사람들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숨을 몰아쉬며 빠르게 지나간다. 정상은 늘 붐빈다. 사진을 찍고, 물을 마시고, 잠깐의 정복감을 확인한 뒤 다시 서둘러 내려간다. 그러나 나는 그 위로 가지 않는다. 정상 아래쯤, 사람들이 잘 머물지 않는 평평한 바위에 앉아 오래 도시를 내려다본다.

그 시간이 좋다.

바위의 서늘한 기운이 바지춤으로 스며들고, 바람이 땀 식은 목덜미를 스칠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평생 찾았던 것은 높은 곳이 아니라, 마음 놓고 오래 머물 수 있는 낮은 자리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낮은 곳은 의외로 넓다. 높은 자리는 좁아서 늘 누군가를 밀어내야 하지만, 바닥은 많은 것을 받아준다. 실패한 사람도, 지친 사람도, 늦게 도착한 사람도 조용히 앉을 수 있다.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인지 내 글도 늘 말석의 문장이다. 세상을 흔드는 선언도 아니고, 심장을 꿰뚫는 절창도 아니다. 다만 사람들 등 뒤에 내려앉은 피로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먼지 같은 슬픔들을 오래 바라보려 한다. 화려한 상석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들 말이다.

이제 와 정점을 탐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그렇다고 바닥의 시간을 후회하기에도 세월은 너무 멀리 와버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싱거운 평화를 사랑한다. 치욕스러운 추락보다 지루한 평온이 더 인간을 오래 살게 한다는 사실을, 나는 평생에 걸쳐 천천히 배워왔다.

오늘도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긴 하품 끝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조용히 뺨을 타고 흐른다. 그리고 나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내 삶을 오래도록 필사한다.

바닥은 넓고, 하품은 길다.

나는 이제 그곳에서야 비로소 단단하게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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