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첫 봄이었다.
서재 한쪽에 쌓아 두었던 서류철을 정리하다가 낡은 종이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모서리가 닳은 상자를 열자 쓰다 남은 분필 몇 자루가 서로 부딪히며 굴러 나왔다. 그중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손끝에 하얀 백회의 감촉이 묻는 순간, 오래 잊고 있던 교실의 냄새가 조용히 되살아났다.
나는 서른 해가 넘도록 칠판 앞에 섰다. 하루의 시작은 늘 같았다. 교실 문을 열고 창문을 조금 열어 바람을 들인 뒤, 칠판 한쪽에 날짜를 적었다. 분필이 칠판을 스치는 소리는 하루의 첫 문장이었다.
학생들은 내 설명보다 먼저 칠판을 바라봤다. 그래서 글씨 하나도 허투루 쓸 수 없다고 믿었다. 줄이 기울어지면 다시 지웠고, 계산이 틀리면 처음부터 써 내려갔다. 긴장한 날이면 분필을 너무 세게 쥐었다.
툭.
분필은 힘없이 부러졌다.
아이들은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손안에 남은 짧은 분필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자꾸만 자신을 다그쳤다. 교사는 늘 단단해야 한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세월은 분필보다 빨리 닳았다.
퇴직을 앞둔 마지막 날, 교무실은 평소처럼 분주했다. 새 학기 시간표를 맞추는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복도를 오갔고, 프린터는 쉬지 않고 종이를 뱉어냈다. 나는 책상 위 명패를 천천히 떼어 서랍에 넣었다. 손바닥만 한 명패였지만, 막상 내려놓고 나니 생각보다 무거웠다.
빈 서랍을 닫고 마지막으로 교실을 둘러보았다. 칠판은 깨끗이 지워져 있었고, 창밖에서는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떠나도 학교는 내일처럼 움직일 것이다. 그 사실이 서운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학교는 원래 한 사람으로 멈추는 곳이 아니었다.
퇴직 후 첫 월요일, 평소처럼 새벽에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여섯 시였다. 몸은 출근을 재촉했지만 갈 곳은 없었다. 무심코 가방을 찾다가 멈춘 손이 허공에 남았다. 그제야 나는 더 이상 출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조용한 거실에 앉아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셨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 길었다.
며칠 뒤, 집 근처 소래산을 천천히 걸었다. 봄은 숲을 서두르지 않았다. 바위 틈의 이끼는 겨우내 품고 있던 물기를 조금씩 되찾고 있었고, 바람은 마른 갈참나무 잎을 조용히 뒤집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걸음으로 산길을 올랐다.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조금 허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세상이 나를 잊은 것이 아니라, 세상이 원래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 손을 내려다보았다.
분필을 쥐던 손.
시험지를 넘기던 손.
학생들의 노트를 받아 들던 손.
오랫동안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던 손이었다.
천천히 손을 폈다.
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무언가를 가득 쥐고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촉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를 붙들고 있던 것은 일이 아니라, 놓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오래된 분필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곁에는 낡은 칠판지우개도 함께 놓았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늘 칠판을 깨끗이 지웠다. 학생들이 적어 놓은 풀이도, 내가 남긴 설명도 모두 지워야 했다.
그때는 지우는 일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니 아니었다.
칠판을 지운다는 것은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새로운 문장이 시작될 자리를 남겨 두는 일이었다. 삶도 그랬다. 무언가를 잃은 뒤에야 비로소 다른 것이 들어올 공간이 생겼다.
요즘 나는 아침을 서두르지 않는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고, 차를 우려 마시며 시집을 몇 장 넘긴다. 가끔 손주가 종이를 내밀며 이름을 써 달라고 한다. 나는 연필을 쥐고 천천히 이름을 적는다. 예전처럼 반듯한 글씨를 고집하지 않는다. 조금 비뚤어져도 괜찮다. 마음까지 비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낡은 분필은 아직도 서재 한쪽에 놓여 있다.
더는 칠판 위에 글씨를 쓰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
가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조용히 바라본다.
그러면 손끝에 하얀 가루가 조금 묻어난다.
나는 그 가루를 서둘러 털어내지 않는다.
오랫동안 나를 지탱했던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분필처럼 조금씩 닳아, 이제는 내 삶의 여백이 되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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