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마다 베란다 창문을 연다.
멀리 산자락에 걸린 안개가 천천히 걷힌다. 시멘트 건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하다. 어디선가 흙냄새라도 묻어올까 싶어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산은 멀리 있는데 코부터 산을 찾는다.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 속 ‘자연인’의 삶을 자주 본다.
울창한 숲, 바위틈에서 솟는 약수, 손에 잡히는 산나물 몇 줌. 냄비에 넣고 끓이면 한 끼가 되고, 장작불을 피우면 저녁이 된다. 밤이면 별이 지붕 가까이 내려온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먼저 산으로 간다.
출근 시간도 없다. 실적을 따지는 사람도, 눈치를 볼 사람도 없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그 단순함이 부럽다.
그러나 나는 안다.
산골의 삶이 화면처럼 고요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새벽이면 작두 앞에 앉아 짚을 썰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고, 여름이면 뙤약볕 아래서 잡초를 뽑았다.
풀은 참 성실했다.
죽어라 뽑아도 돌아서면 또 자랐다. 어린 마음에는 풀이 아니라 지겨움이 자라는 것 같았다.
겨울은 더 정직했다.
물은 얼었고 손등은 갈라졌다. 장작 한 토막도 사람의 팔을 빌려야 따뜻한 방이 되었다.
자연은 아름다웠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흙냄새를 맡으려면 흙을 밟아야 했고, 장작불의 낭만을 누리려면 먼저 도끼를 들어야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시골을 벗어나고 싶었다.
진흙 묻지 않는 신발을 신고 싶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눈이 오면 마당부터 쓸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도시로 왔다.
그리고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평생 벗어나고 싶었던 시골을 이제는 도시의 베란다에서 그리워한다.
사람 마음은 참 염치도 없다.
불편할 때는 떠나고 싶더니 편안해지자 그 불편했던 곳을 그리워한다.
물론 나는 안다.
산속에 들어가면 벌레가 있고 겨울이면 춥다. 병원은 멀고 장보기조차 일이 된다. 화면 속 장작불은 낭만이지만 실제 장작은 무겁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주지 않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자연인 프로그램을 본다.
도시도 사람을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내 몸에서 많은 수고를 덜어주었다. 엘리베이터는 나를 힘들이지 않고 올려주고, 보일러는 장작 없이 방을 데운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음식이 현관까지 온다.
몸은 편해졌다.
그런데 마음까지 편해진 것은 아니다.
아마 그래서 산을 바라보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지금 나더러 정말 산으로 들어가 살라고 하면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따뜻한 물도 좋다. 보일러도 좋다. 아프면 금방 갈 수 있는 병원도 좋다.
문명의 혜택은 모두 누리면서 흙냄새까지 맡고 싶다.
생각해 보면 꽤 뻔뻔한 자연인이다.
그래도 아침이면 베란다 창문을 연다.
오늘도 산자락 위로 안개가 걷힌다.
산은 어제처럼 그 자리에 있고 나는 여전히 아파트 안에 서 있다.
가지도 않으면서 바라보고, 돌아갈 생각도 없으면서 그리워한다.
한때는 저 산 너머로 나가고 싶었다.
이제는 저 산 쪽으로 마음이 간다.
세월은 사람을 참 이상한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나는 한동안 창가에 서서 산을 바라본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내가 그리워한 것은 정말 산이었을까.
아니면 산을 바라볼 때마다 잠깐씩 돌아오는,
그 산을 떠나기 전의 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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