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살쯤 더 늙은 어느 봄날, 그녀를 다시 만났다.
햇살이 들판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먼 곳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분명 눈앞에 있는데 손을 뻗으면 사라질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녀도 그랬다. 가까이 앉아 있었지만 오래전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얼굴에는 세월이 얇게 내려앉았고, 웃음에는 여전히 내가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헤어진 뒤 각자의 시간을 살아냈다. 하루가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십 년이 되었다. 시간은 많은 것을 흐리게 했지만 어떤 이름은 지우지 못했다. 마음속에만 남겨 둔 보내지 못한 편지와 첫사랑의 이름처럼, 그녀는 말하지 않은 문장 속에서 오래 살았다.
떨어져 있었기에 오히려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생활이 쌓이지만, 떠난 사람에게는 그리움이 쌓인다. 생활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그리움은 기억하고 싶은 모습만 남긴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말간 웃음과 가벼운 말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이젠 그만 잊어요.”
쉬운 말이었다. 그러나 잊는다는 것은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만났다고 마음이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보내준다고 정말 떠나보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떠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나는 오래 마음에 머물게 하는 사람이었다.
한때는 다시 붙잡고 싶었다. 오래 기다린 마음에는 기다린 만큼의 권리가 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사랑은 오래 품었다고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은 계산서가 아니어서 기다린 세월만큼 돌려받을 수도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별 뒤의 마음을 천천히 치유하는 과정처럼, 놓아준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끝나는 결심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상대의 자유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이상하게도 원망은 남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그녀가 있었기에 내 청춘의 한쪽이 반짝였다. 만나지 못했던 시간에도 그 기억은 노래처럼 흘렀고, 때로는 힘든 날을 견디게 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실패한 사랑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함께 살지 못했어도 한 사람의 계절을 따뜻하게 했다면 그 마음은 이미 제 몫을 다했다. 사랑의 완성은 언제나 결혼이나 소유의 모양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인연은 묘하다. 잡히지 않았기에 더 선명하고, 닿지 않았기에 더 깊어지는 관계도 있다. 인연이 삶에 남기는 흔적은 그 사람이 곁에 있는지보다, 내가 그 만남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에 더 오래 머문다.
그녀는 내 인생의 아지랑이였다. 보이지만 만질 수 없고, 가까운 듯하면서도 다가가면 멀어지는 존재였다. 예전의 나는 아지랑이를 붙잡으려 했다. 이제는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조금은 안다.
아지랑이는 길을 막지 않는다. 잠시 풍경을 흔들어 놓고 사라질 뿐이다. 그 흔들림 덕분에 우리는 평범한 들판도 오래 바라본다.
이 이루지 못한 사랑 감성 에세이는 그녀를 되찾기 위한 고백이 아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그 사람의 자리로 돌려보내고, 그 인연이 남긴 빛만 조용히 간직하려는 늦은 인사다.
그녀는 다시 자신의 길로 갔다. 나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붙잡지 않았다.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인연은 충분하다.
봄날 들판에는 지금도 아지랑이가 핀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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