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흔들린다.
누군가 나보다 앞서 나가면 마음 한쪽이 조용히 무너지고, 반대로 그 사람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감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인간의 마음에는 타인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어두운 본성이 숨어 있다.
나 또한 그 본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30년 넘게 교단에 서 있는 동안 나는 수많은 말을 듣고 또 수많은 말을 내뱉으며 살아왔다.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른들의 욕망과 비교가 교차하는 작은 사회이기도 했다.
어느 해 봄이었다.
한 동료 교사가 승진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교무실에 퍼졌다. 모두가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커피잔이 몇 번 오가기도 전에 분위기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운이 좋았네.”
“윗사람 눈에 잘 들었겠지.”
낮게 웃으며 던진 말들이 공기 속을 천천히 떠다녔다. 겉으로는 농담 같았지만, 그 안에는 시기와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 나 역시 그 자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웃고 있었다.
그날 퇴근길,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직접 누군가를 헐뜯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침묵으로 그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부재를 이용해 마음의 균형을 맞추려는 인간의 습성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닫고 있었다.
그 무렵부터 자주 떠올리게 된 구절이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 성경 마태복음 15장 11절
젊은 시절의 나는 이 문장을 단지 종교적 교훈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삶을 가장 오래 흔드는 것은 가난도 실패도 아닌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들은 말은 오래 남는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학생이 한 명 있다.
발표 시간만 되면 얼굴이 붉어지던 아이였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뒤 그 학생이 교탁 앞에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선생님, 저는 왜 사람들 앞에만 서면 작아질까요?”
나는 별생각 없이 말했다.
“넌 원래 자신감이 부족한 편인 것 같구나.”
그 순간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것이 흔한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뒤 졸업한 그 학생에게서 편지 한 통이 왔다. 편지 끝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저는 늘 자신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이미 잊고 있던 말 한마디를,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문장처럼 붙들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말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상처를 남길까 봐 말을 줄였고, 불필요한 대화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누군가의 흉을 듣는 자리에서는 가능하면 침묵하려 했다. 하지만 침묵이 언제나 지혜인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저녁,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말을 아끼는 게 아니라 마음을 숨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요.”
순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침묵한다고 믿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은 그 침묵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조금씩 다른 방식의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한 말, 듣기 좋은 칭찬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표현을 고민하게 되었다.
은퇴 후 나는 자주 소래산을 걷는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사람에게 준 상처가 함께 떠오른다. 바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그 침묵 속에서는 마음이 조금씩 정리된다.
정상 부근 벤치에 앉아 아래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은 평생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애쓰며 살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과 화해해야만 비로소 편안해진다는 것을.
젊은 날의 나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썼다.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고, 때로는 진심보다 분위기를 선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다. 사람을 지키는 것은 화려한 말솜씨가 아니라 함부로 말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인간의 질투와 비교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여전히 타인의 실패를 은근히 반기고, 누군가의 빈틈을 이야기 삼아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완전히 다르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조심하려 한다.
누군가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쉽게 판단하지 않으며, 내가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래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오늘도 서재 창문 너머로 저녁 바람이 스며든다.
나는 조용히 원고지 앞에 앉아 문장을 고른다.
예전처럼 아름다운 표현으로 나를 꾸미기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진심에 가까운 말을 남기고 싶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남긴 말의 온도 속에서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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