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들수록 사람 만나는 일이 조심스러워진다.
젊을 때는 인간관계가 넓은 것이 좋은 삶이라고 믿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부탁을 들어주고,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어른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한 부탁은 거절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도 괜찮다고 했고, 마음이 힘들어도 웃으며 사람들을 만났다. 상대가 서운해할까 봐 싫다는 말을 삼켰고, 내가 조금 손해 보면 관계는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살수록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밤이면 이유 없이 피곤했다. 누군가는 고민을 털어놓고 후련해졌겠지만, 나는 오히려 내 안이 텅 빈 것처럼 멍해졌다. 그때 알았다.
착한 사람은 남보다 자기 마음을 더 늦게 돌본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나는 착한 사람이기보다 미움받기 싫은 사람이었다. 누군가 나를 불편해하는 표정을 견디지 못했고,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섰다.
하지만 사람은 끝없이 좋은 사람으로만 살 수 없다.
계속 참고, 계속 맞춰주고, 계속 괜찮다고 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관계에 지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배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경계선인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조금씩 늦게 대답하는 연습을 한다.
예전 같으면 바로 “제가 할게요”라고 말했겠지만, 이제는 가끔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짧은 말 한마디를 배우는 데 참 오래 걸렸다.
처음에는 미안했다. 거절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지 않아도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에 조금의 숨 쉴 공간이 생겼다.
착한 사람이 오래 살아가는 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지 않는 것.
누군가의 기분보다 자기 마음을 먼저 살펴보는 것.
힘든 날에는 조용히 혼자 쉬어가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에게도 너무 모질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착한 사람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잘 들어주길 바라고, 이해해주길 바라고, 양보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착한 사람도 결국 지치는 평범한 인간이다.
마음이 메마르기 전에 잠시 물러나는 일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따뜻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알게 된다.
착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상처받으면서도 끝내 자기 따뜻함을 잃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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