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없는 집안은 없다

퇴직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부터였다. 예전에는 들리지 않던 집안의 소리가 하나둘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내의 짧은 한숨, 냉장고 문을 툭 닫는 소리, 주식 시장이 꺾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흘리는 신음.
32년 넘게 학교에서 칠판을 마주하고 살 때는 몰랐다. 집에도 온도가 있고, 사람 사이에도 미세한 기압차가 있다는 것을.
얼마 전 연금 통장과 주식 계좌를 들여다보다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 큰돈 때문은 아니었다. 노후 자금을 어떻게 굴릴 것인가를 두고 생각이 달랐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평생 학교에만 있어서 세상물정을 몰라요.”
짧은 말이 오래 남았다.
학교에서는 내 자리가 분명했다. 교실에 들어서면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내 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퇴직하고 나니 월급은 연금으로 바뀌었고, 명함에서 직함이 사라졌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았다.
아내의 말이 아팠던 것은 틀려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내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마음을 들킨 탓인지도 몰랐다.
방에 들어가 창밖을 보았다.
남들은 잘 사는 것 같았다. 자식들은 제자리를 잡고, 노후 준비도 끝내놓고, 부부가 여행이나 다니며 느긋하게 늙어가는 것 같았다.
왜 나만 아직 돈 걱정을 하고, 아내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는가.
남들은 고상하게 늙어가는데 나만 시시한 문제를 붙잡고 사는 것 같았다.
며칠 뒤 동창을 만났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친구였다. 상가도 있었고 자식들도 해외에서 살았다. 늘 옷차림이 반듯했고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부러워했다.
소주가 몇 잔 돌았을 때 친구가 잔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굴렸다.
“우리 집도 별수 없어.”
해외에 있는 큰아들이 사업에 실패한 뒤 몇 년째 돈 문제로 힘들다고 했다. 그 일로 부부 사이에도 골이 생겨 한집에서 각방을 쓴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친구는 더 말하지 않았다.
빈 잔만 바라보았다.
그날 처음으로 그 친구가 늙어 보였다.
나는 그동안 친구의 삶에서 잘라낸 장면만 보고 있었다.
좋은 직장, 건물, 해외에 사는 자식, 반듯한 옷차림.
타인의 삶은 편집된 요약본으로 보이지만, 내 삶은 편집 없는 원본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남의 행복은 멀리서 환하고, 내 문제는 가까이에서 시끄럽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전에는 그저 불빛이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불빛 뒤의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떤 집에서는 웃고 있을 것이고, 어떤 집에서는 등을 돌리고 있을 것이다. 아무 일 없는 얼굴로 저녁밥을 먹는 집에도 말하지 못한 걱정 하나쯤 놓여 있을지 모른다.
문제 없는 집안은 없을 것이다.
가족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곳인지도 모른다.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는 거실에서 TV를 보며 사과를 깎고 있었다.
며칠 전 말다툼의 흔적이 아직 우리 사이에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았다.
아내도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뒤 아내가 접시를 내 쪽으로 밀었다.
나는 사과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달았다.
창밖을 보니 수많은 아파트 불빛 가운데 우리 집 불빛도 하나 섞여 있었다.
특별히 화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부서지지도 않은 집.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사과를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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