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

가을 하늘이 너무 투명해서
감추어 둔 흉터까지 비칠 것 같다.
담장 아래 해바라기는
제 그림자 쪽으로 고개를 숙인다.
나도 말하지 못한 안부 하나를
입안에서 오래 굴린다.
고요를 가르며 여객기가 지나간다.
흰 자국은 오래 남지 않는다.
가을 햇빛은 묻지 않는다.
무엇을 잃었는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다만 금 간 담장과 마른 잎을
깨진 그대로 환하게 비춘다.
나는 해바라기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
기울어진 것에도
볕은 끝까지 닿으므로.
해가 낮아질수록
꽃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마침내 나보다 먼저
담장 밖으로 넘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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