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글쓰기, 인간의 생각이 필요한 이유 | AI는 쑥차의 맛을 모른다

AI는 쑥차의 맛을 모른다

 

새벽 산자락을 오르면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스며든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흙길 위의 그늘 문양은 흐트러졌다 다시 모인다.

얼마 전 AI에게 ‘숲길의 아침 햇살’을 그려달라고 했다. 몇 초 만에 수채화 한 장이 화면에 떠올랐다. 나뭇잎의 결도, 빛의 각도도, 멀리 번지는 안개도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그런데 실제 숲길을 걷다가 발끝에 작은 돌멩이가 채였다. 젖은 흙냄새가 올라왔고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그 순간 화면 속 그림이 생각났다.

그림 속 나무들은 완벽하게 서 있었지만, 그 아래를 걷는 사람의 숨은 없었다.

요즘 AI는 내 서재의 유능한 조교다. 은퇴 후 글을 쓰면서 기억나지 않는 고사성어를 묻고, 복잡한 자료를 정리해 달라고 한다. 때로는 내가 몇 시간을 끙끙거린 문장보다 더 매끈한 문장을 몇 초 만에 내놓는다.

그럴 때면 조금 허망해진다.

온 세상의 지식이 손끝으로 모여드는 AI 시대에 굳이 책장을 넘기며 힘들게 알아갈 필요가 있을까. 이제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잘 찾아내는 것이 힘’인 것은 아닐까.

어느 날 서재에서 나오자 아내가 쑥차 한 잔을 건넸다.

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한 모금 마셨다. 쌉싸래한 향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오래전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시루에서 김이 오르면 나는 그 곁을 서성이곤 했다. 어머니는 갓 쪄낸 쑥떡 한 조각을 떼어 내 손에 올려주셨다. 너무 뜨거워 이 손 저 손으로 옮겨가며 먹었다.

“뜨겁다. 천천히 먹어라.”

어머니는 그 말만 하셨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쑥 향을 맡으면 그 목소리가 먼저 돌아온다.

AI에게 ‘쑥차는 어떤 맛인가’라고 물으면 쌉싸래한 맛과 풀 향을 정확하게 설명할 것이다. ‘쑥떡’과 ‘어머니’를 연결해 아름다운 문장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내 혀끝에 남은 그날의 쑥떡과 뜨거운 떡을 건네던 어머니의 손은 검색할 수 없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안다는 것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어떤 앎은 머리가 아니라 몸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젊은 날에는 이해되지 않는 책 한 대목을 붙잡고 밤을 보내기도 했다. 책을 덮었다 다시 펼치고, 밑줄을 긋고, 여백에 물음표를 그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흩어져 있던 문장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아, 이 말이었구나.”

그렇게 어렵게 깨달은 것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았다. 지식만 기억한 것이 아니었다. 늦은 밤의 고요와 책장의 감촉, 이해하지 못해 답답했던 시간까지 함께 내 안에 들어왔다.

AI 시대의 앎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AI와 경쟁할 생각이 없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일은 기꺼이 맡긴다. 오히려 AI의 답을 읽다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답 앞에서 한 번은 멈춰야 한다.

이 말은 정말 맞는가.
나는 이 생각에 동의하는가.
내가 살아온 시간에 비추면 이 말은 무엇이 되는가.

AI는 답을 빠르게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답이 내 삶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결정하는 일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AI 시대의 글쓰기도 결국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오늘도 나는 컴퓨터를 켠다. 화면에는 AI가 정리해 준 자료가 반듯하게 떠 있다. 나는 그 도움을 고맙게 받아든다.

그러다 마음에 걸리는 문장 앞에서는 멈춘다. 오래된 책을 다시 펼치고 종이에 몇 자를 적는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쓴다.

화면 속 문장은 매끈한데 내 문장은 자꾸 멈춘다.

그래도 이제는 그 느림이 싫지 않다.

숲길은 직접 걸어야 발바닥에 흙의 감촉이 남는다. 쑥차는 직접 삼켜야 목구멍이 따뜻해진다.

앎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AI가 몇 초 만에 가져다주는 시대에도, 그 지식을 의심하고 삶에 비추어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은 건너뛸 수 없다.

나는 다시 연필을 든다.

화면 옆 종이에는 지우개 가루가 몇 점 흩어져 있다. 한참 문장을 바라보다 마지막 점을 찍는다.

잠시 후, 다시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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