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의 소나기|기다림 끝에 남은 비, 삶을 기억하게 하는 순간

좋은 날의 소나기

 

사람은 오래 기다린 날을 쉽게 잊지 못한다. 기뻐서가 아니라, 그날의 날씨까지 함께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내 기억 속 좋은 날들에는 소나기가 자주 내린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잔치는 마을 전체의 행사였다.

넓은 잔디밭에는 천막이 세워지고, 새 멍석이 깔렸다. 가마솥에서는 국이 끓었고, 부엌에서는 전 부치는 냄새가 골목 끝까지 번졌다. 어른들은 웃으며 잔을 주고받았고, 아이들은 잔칫집을 제 놀이터처럼 뛰어다녔다.

잔칫날 아침이면 나도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그날만큼은 오래 기다린 만큼 오래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기억 속 잔칫날에는 이상하리만큼 비가 많다.

처음부터 흐린 날은 아니었다. 햇볕은 천막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사람들은 안심한 얼굴로 상을 차렸다. 그러다 바람이 먼저 불었다. 천막이 크게 한 번 흔들리더니 빗방울 몇 개가 떨어졌다.

“금방 그치겠지.”

누군가 그렇게 말했지만, 장대비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천막 위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웃음소리를 삼켰다. 처진 천막에는 빗물이 고였고, 이내 한꺼번에 쏟아져 멍석을 적셨다. 어른들은 상을 안으로 옮겼고, 아이들은 젖은 흙바닥에서 미끄러지며 웃었다.

그날 잔치는 끝났다.

하지만 내 기억은 끝나지 않았다.

비 때문에 잔치를 오래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 기다린 날도 순식간에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좋은 일이 생기면 기쁨보다 먼저 조용해지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 무언가 달라질까, 혹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어린 마음에 스며든 그 작은 긴장은 나이를 먹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은 흘렀다.

잔칫집 대신 결혼식장을 드나들고, 운동회 대신 아이들의 발표회를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다. 기다리는 일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오래 기다리던 소식이 있는 날이면 무심코 창밖을 본다.

비가 오는지 확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오래전 그 잔칫날 이후, 나는 좋은 날에도 마음 한편에 작은 우산 하나를 접어 두고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거센 폭풍보다 잠깐 스쳐 가는 소나기인지도 모른다. 폭풍은 지나가면 모두가 기억하지만, 소나기는 기다리던 하루 위에 내리기 때문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내 기억 속 좋은 날들은 하나같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행복은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졌지만, 그 행복 위에 떨어지던 빗소리는 이상하리만큼 선명하다.

이제는 안다.

좋은 날은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아니라, 비가 지나간 뒤에도 오래 기억되는 날이라는 것을.

그래도 나는 여전히 좋은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 날이면, 오래된 버릇처럼 창밖을 한 번 바라본다.

창밖은 대개 맑다.

비는 오래전에 그쳤는데, 마음속 소나기만 아직 지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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