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월곶 카페 옥순, 삼면의 산자락에서 조강을 바라보다

나이가 들수록 멀리 가는 여행보다 오래 바라보는 여행이 좋아진다.

많은 것을 보고 돌아오는 날보다 한 사람의 얼굴, 한 줄기 물길, 오래된 이름 하나를 마음에 담아오는 날이 있다.

그날의 김포 월곶이 그랬다.

김포 월곶의 시골길로 들어서자 길은 조금씩 좁아졌다. 차 한 대가 지나가면 맞은편 차가 잠시 비켜서야 할 듯한 농로였다.

논과 밭이 가까워지고 낮은 산들이 세 방향에서 다가왔다.

그 산자락 안에 3층 건물 하나가 조용히 들어앉아 있었다.

카페 옥순.

처음 눈길을 끈 것은 건물보다 이름이었다.

옥순.

요즘 카페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이름이다. 어머니나 이모, 오래전 이웃집 아주머니의 이름처럼 낯설지 않고 정겨웠다.

그날 우리 일행은 다섯이었다.

아내와 나, 막내 여동생 경애와 매제, 그리고 매제의 누님이었다.

경애는 강화도에 산다.

김포와 강화는 멀지 않다. 그러나 가까이 산다고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다.

젊을 때는 다음이 언제든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달에 보면 되고, 다음 계절에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알게 된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킬로미터로만 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막내였던 경애도 어느새 환갑을 넘겼다.

어릴 적에는 고무줄놀이를 하던 어린 누이였다. 그런 동생과 이제는 서로의 흰머리를 바라보며 웃는다.

세월이 얼굴을 바꾸어도 오래전 모습 하나쯤은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것이 형제인가 보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소소한 안부를 나누었다.

그러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 조강(祖江)의 넓은 물길이 펼쳐져 있었다.

처음 바라보면 강이라기보다 바다처럼 느껴질 만큼 넓다.

조강은 김포의 한강 하구를 이해하는 중요한 물길이다. 한강과 임진강에서 내려온 물이 만나고 예성강의 물길과도 이어져 서해로 향하는 하구 수역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다.

김포 평화누리길 2코스에 ‘조강철책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곳의 지리와 역사를 보여준다. 문수산성 남문에서 조강저수지를 거쳐 애기봉 입구까지 이어지는 약 8km의 길이다.

조강의 물길 너머에는 북녘이 있다.

김포 월곶과 가까운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조강과 한강 하구, 북한 지역을 바라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접경 공간이다.

지도에서 보면 남과 북은 선으로 나뉜다.

그러나 실제 풍경에는 선이 보이지 않는다.

물이 있고, 들이 있고, 낮은 산이 이어진다.

눈으로는 이렇게 가까운데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이 쉽게 실감 나지 않는다.

경애도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말했다.

“오빠, 저기 바로 건너인데…… 그치?”

“그러게.”

말은 거기에서 끝났다.

우리는 잠시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문득 강화도에 사는 경애를 생각했다.

강화와 김포는 가깝다.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살아가는 일에 밀리다 보면 가까운 사람도 자주 만나지 못한다.

반대로 눈앞의 북녘 땅은 지척인데 마음대로 갈 수 없다.

같은 가까움인데 전혀 다른 거리였다.

하나는 마음먹으면 건널 수 있는 거리이고, 하나는 마음만으로 건널 수 없는 거리였다.

경애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어린 누이의 모습은 세월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이름은 그대로였다.

경애야.

어릴 때도 그렇게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사람은 늙어가는데 이름은 좀처럼 늙지 않는다.

차를 다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카페 옥순 주변에는 낮은 산자락이 세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높고 웅장한 산은 아니었다. 가까이 내려와 마을과 정원을 둘러싼 산이었다.

우리는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경애 부부와 매제의 누님이 앞서고, 아내와 내가 뒤를 따랐다.

다섯 사람의 그림자가 잔디 위로 길어졌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젊은 날에는 함께 있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말없이 같은 길을 걷는 것도 대화라는 것을.

앞서 걷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막내였던 경애가 환갑을 넘겼다는 것은 나에게도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같은 정원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김포 월곶은 한강 하구와 접경지역의 풍경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인근에는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이 있고, 문수산성 남문에서 애기봉 입구까지 평화누리길 조강철책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날 내게 조강은 관광지의 지명만은 아니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물길이었고, 가까움과 멂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정원을 한 바퀴 돌고 차로 돌아왔다.

왔던 농로를 따라 천천히 마을을 빠져나왔다.

백미러 안에서 카페 옥순이 작아졌다.

조금 더 가자 삼면의 산자락도 하나둘 겹쳐졌다.

경애는 다시 강화도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섯 사람이 다시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기보다 오늘을 기억하기로 했다.

삼면으로 산이 둘러선 김포 월곶의 작은 정원.

바다처럼 넓게 보이던 조강.

물길 너머 가까이 놓여 있던 북녘.

그리고 그 풍경을 함께 바라보던 다섯 사람.

사람은 먼 길을 찾아가면서도 가까운 사람을 오래 만나지 못한다.

그래도 어떤 거리는 마음만 먹으면 다시 좁힐 수 있다.

그날 조강을 바라보며 오래 생각한 것은 먼 곳이 아니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차가 농로 끝을 벗어나기 전, 동생을 불렀다.

“경애야.”

동생이 돌아보았다.

“왜?”

나는 잠시 경애의 얼굴을 보다가 웃었다.

“아니다.”

차창 밖으로 삼면의 산자락이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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